라이프로그


<문화연대>의 공동대표로 선임되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활동해오던 <문화연대>의 공동대표로 선입되었습니다. 그 동안 대표로 활동하셨던 강내희 선생님께서 지식순환협동조합의 대학장으로 취임하시면서 퇴임을 하셨고 제가 그 자리를 잇게 되었습니다. 더욱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몇 가지 각오를 취임사를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조직의 효율성과 지속성을 위해 노력하며 문화연대 조직이 모범이 되도록 하겠다고 전했습니다. 둘째로 시민친화적 활동을 더 벌이겠다는 각오를 밝혔습니다. 셋째, 시민사회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말씀도 전했습니다. 약속대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글쓰기의 어려움

글을 적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속한 언어 공간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누구든 독자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 한글로 글을 적는 경우엔 한국 독자 혹은 그 안의 더 좁은 범주의 독자를 상정하게 된다. 간혹 잘 적은 글은 번역되어 다른 언어 공간에서 다시 태어나긴 하지만 그럴 경우 번역자에 의해 혹은 원저자에 의해 약간의 변명이 더해진다. 원래 독자와는 다르니 잘 감안해달라는 부탁일 것이다. 이처럼 글 적기 혹은 적어진 글은 독자가 - 암묵적이든 아니든- 상정되어 있고, 그 들과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다. 바흐친이 텍스트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준 탁월한 제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계 바늘을 약 20여년 전으로 돌려본다. 영어로 박사논문을 적을 때다. 그 때 나의 독자는 당연히 심사위원들이었다. 물론 더 많은 독자를 겨냥했을 수도 있지만 박사 학위를 따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나는 논문에서 그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3번의 심사에서도 그들의 언어가 내 논문 안으로 질러 들어왔고, 때론 내 고집이 그들의 조언을 막기도 했다. 논문 주제가 한국의 문화정책과 관련된 것이라 비교적 큰 목소리로 군사 정권의 정당성을 비판했고, 그에 맞는 다양한 이론을 끌어왔다. 나의 독자인 심사위원들은 그 같은 비판적 시각에 동의해주었다. 오히려 더 강한 목소리를 낼 것을 주문하는 입장도 있었다. 그래서 독자와 관련한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발표할 내용도 나름대로 요약해두었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분명 다른 언어 공간에 존재하는 다른 독자집단을 동일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미국의 헤게모니가 내 안에서 잘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이후 나의 글적기가 미국인을 상대로 해본 적이 없다. 간혹 영어 논문을 적기도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작성된 글의 번역본이었던 탓에 그런 독자 상정은 없었다. 예전 20여년 전의 글 적기를 반성했다기 보다는 아예 학문 생활 자체에 그들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연구나 학문 정진이 더 잘 이뤄졌다면 과거의 경험을 비판하고, 미국 중심이었던 경험을 뒤집는 작업을 했을 테지만 실제론 그러질 못했다. 그러니 글적기에 대한 고민의 계기가 없었을 수 밖에. 그러다 지난 몇 년간 일본과 관련한 연구와 교류를 하면서 다시 글적기를 고민하게 된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본 관련 일을 연구하고, 글을 적다보면 독자가 양분되어 나타난다 (사실은 그 보다 훨씬 더 복잡하긴 하다). 한국의 독자와 일본의 독자를 모두 감안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그럴 경우 글의 진전이 어렵다. 아니면 주절주절 변명으로 일관되기 십상이다. 한국의 강한 민족주의를 비판하면 당연히 일본의 독자들이 그를 쉽게 자신의 민족주의로 수용할 거라는 고민에 빠진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양쪽 독자 집단이 강한 서사적 진실을 기반으로 모든 현안을 이해하려는 고집이 있는 탓에 힘이 든다는 말이다. 심지어 과거에 대한 기억 조차도 선별적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대한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그 기억이 민족적 기억이며 바뀔 수 없는 서사적 진실이라고 말하기 일쑤다. 불가피하게 연구자는 그 중간에 서서 그 불편한 진실을 해체해내야 하는데 그 일을 쉽지 않다.

 

대중 기억과는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동료 학자집단(peer scholars)에서도 드러나게 반응을 하지 않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양비론적 입장에 서게 되는데 늘 그렇듯 양비론이 맞을 운명이란 뻔하지 않은가. 사실 이 같은 일은 반복된다. 비극이나 희극으로 바뀌는 재미는 없으나 그냥 지루하게 반복된다.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기억을 떠 받치는 서사적 진실로부터 후퇴하지 않고, 또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누가 더 전쟁의 피해자인지를 이야기해야 하고, 국제 무대에서 피해자 경쟁을 벌인다. 그 경쟁으로 인해 일본은 이제 전쟁의 가해자임을 망각하는 새로운 기억법에 익숙해졌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가 8월의 저널리즘 주요 메뉴가 된 지 오래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쉬쉬하던 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주의 담론으로 치환하고, 모든 일에 그를 앞장 세운다. 그러면서도 일본인 처 문제나 양공주문제엔 입을 닫는다. 양 쪽다 과거, 기억의 문제에선 도그마에 갇혀 있다. 그래서 양 독자를 겨냥한 일을 하기엔 늘 주저되고, 조심스럽고 그렇다. (계속)

 


일본에서 살다보니.....

일본에 있는 동안 별 일을 다 겪는다. 지진을 두 번 느꼈고, 가까운 곳에서 화산이 터지는 일을 뉴스로 전해 들었다. 오늘 중의원이 해산되었고, 다음 달에 선거를 한단다. 아베노믹스의 한 가운데서 소비세 8% 인상의 순간도 경험했다. 일본 매스컴 학회에서 발표를 했고,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학부, 대학원생 수업에서 특강을 했다. 한일 언론학회에 긴 토론을 했던 기억도 새롭다. 다음 달 초엔 사요나라세미나 발표를 남겨두고 있다. 재일 조선인에 대한 헤이트스피치를 성토하는 토론회 발표와 피켓팅도 행했다. 대학원생을 초청해 일본 대학원들과 함께 발표를 하는 자리도 만들었었다. 남은 기간이 얼마 되지 않은데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해진다. 제대로 감당도 못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기는 일들이 새롭고 재밌다. 모든 것이 예정된 대로만 이뤄지길 기대하며 살아가는 일본인 동료들은 내 꼴에 혀를 차겠지만 이게 대체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며 오히려 뻔뻔해지고 있다. 돌아갈 날이 머지 않았는데도 아직 새롭게 벌어질 일을 기대하고 있는 꼴이 우습기도 하다


과학자의 자살

                                 (아베에게 사업을 설명하는 사사이 요시키 교수. 그는 아베노믹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일본 이학연구소의 사사이 요시키 재생발생과학연구 센터 부센터장이 85일 자살했다. 그는 같은 연구소의 오보카타 연구주임의 STAP 세포 논문의 공동저자였고, 연구를 지도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논문이 네이쳐 지에서 취소되고 연구 부정에 대한 여론이 거세지자 심신이 피곤함을 주변에 알려왔다고 한다. 그는 네이쳐와 셀 등에 10 여 편의 논문을 게재한 일본에서도 유능하며, 앞 날이 창창한 연구자였다. 그에 대해서는 논문 작성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기 보다는 관리 감독이 소홀했다는 주의가 내려진 터라 그의 자살을 바라보는 일본은 안타깝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동안 그의 연구 행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얽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사이 씨는 교토대학의학부 출신이다. 그는 36살에 출신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유능만능줄기세포(iPS) 연구에 전념했다. 이 분야는 교토대학이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같은 대학의 야마나카 교수는 이 분야 연구로 2006년 노벨 생리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공동수상했다. 그 같은 배경에서 그가 모교였던 교토대학을 떠나 이학연구소를 떠난 것 부터가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그가 더 큰 꿈을 가지고 있었거나, 아니면 이학연구소에서 큰 돈을 걸고 그를 스카웃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그는 더 큰 과학자가 되기 위한 꿈을 꾸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연일 그의 자살 소식을 알리는 미디어는 중계차를 연구소와 그가 안치된 병원, 그리고 자택이 있는 고베에 배치하고 뉴스를 쏟아낸다. 오보카다 신드롬이랄만큼 연구 논문 자체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연구에서 밝힌 신형만능세포 실험이 정말 성공적이었다면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희소식이 되고, 의약산업으로서도 그야말로 잭팟이 터질 일이었다. 오보카다의 예쁜 용모도 대중에게 어필했고, 그가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만들어낸 제스처도 대중으로 하여금 안타깝다는 맘을 갖게 했다. 30대 초반 미모의 여성 과학자의 화려한 등장, 그에 대한 외부에서의 반격과 내부의 응전, 그리고 고의가 아닌 실수를 인정하며 떨어뜨린 여성 과학자의 눈물. 텔레비전은 미모의 여성 과학자의 눈물이 시청률을 높여 준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그러니 그를 지도 감독했던 유능한 과학자의 자살 소식은 미디어로서는 또 다른 먹이감이 아닐 수 없다.

오보카다의 연구 업적을 알리는 발표 기자회견 자리에도 같이 했던 그는 이 연구가 같은 분야에서 최근 20여년 연구 중 최고였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날조위기에 빠졌었다. 그러자 미디어의 인터뷰는 갑자기 둘 간에 부적절한 관계는 없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둘은 강력히 부정하고 불쾌한 억측이라고 말했지만 미디어는 물었던 말을 되 삼키진 않았다. 이미 암시되어 버린 탓에 둘은 옴짝 달짝하지 못하고 불륜의 주인공인양 이야기되고, 그 불륜의 틈새에서 연구결과가 나온 것처럼 부풀려졌다. 사사이 교수가 병원에 입원한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거기다 사사이 교수는 자살하면서 오보카다 연구원에게 따로 유서를 남겼다. 즐거운 연구 기간이었으며 앞으로도 연구를 진전시켜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제 누구도 증언해주기 힘든 애정 라인이 되었으니 미디어의 부적절한 관계질문은 이쯤 되면 기정 사실화되어 아련한 실험실 사랑 이야기로 번질 것이 뻔하다.

과학자의 꿈,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연구 성과에 대한 강박 그리고 연구부정, 그를 클로즈업하는 미디어. 부적절한 관계를 묻는 마이크, 그리고 심신이 피곤함을 고백하며 고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학자. 이야기 거리에 목말라 있는 미디어와 대중에게 이 보다 드라마틱한 일이 있을까. 이제 이야기는 번져간다. 아베가 이학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사사이 교수는 직접 연구소의 연구 성과들을 브리핑했다. 연구성과가 실질화되었을 때 얻을 일본의 경제적 이득까지 곁들였다. 아베 정부는 그 분야의 연구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다. 지금 이학연구소에는 새로 짓는 연구동들이 있는데 대부분 사사이 교수와 관련된 것이라 한다. 그만큼 그는 이미 큰 과학자가 되었고 외부로부터 펀드를 따오고, 국가와 직접 딜을 할만큼 힘있는 과학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몇몇 매체는 그의 죽음이 아베 정부의 새로운 산업을 미는 아베노믹스에 큰 타격을 가져올 거라는 엄청난 점프로 감행해 보도하고 있다. 이제 드라마에 정치까지 보태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과학, 연구실 부적절한 관계, 미디어, 정치, 그리고 야망. 이 요소들로 한 과학자의 삶과 죽음이 버무려지고 있다. 텔레비전이 심하게 나섰다고 해서 이 요소들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모두 허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젠 과학자의 삶이 미디어가 만들었던 허구적 이야기로 다가가면서 그 간극을 좁혀지고 있는 듯 하다. 과학자들이 내 몰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 연구하라, 더 돈을 따오고 실적을 올리며, 네이처에 셀에 사이언스에 기고하고, 조직의 이름을 높이고, 경제도 살리고, 노벨상도 받고, 건물도 더 짓고, 텔레비전에 얼굴도 더 내밀고, 국가 보조도 받고, 수상도 대통령도 만나고, 가능하면 과학 발전을 위해 국회에도 가고, 더 큰 대학으로 가서 최신 랩을 만들어 학생들도 끌어오고....... 세상은 과학자를 이렇게 이끌고, 활용하려 한다. 화려하게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욕망 표상에 다가가지만 그건 결코 채워지지도 않고, 주변에선 칭찬하면서 한발 더 전진하라고 박수로 등을 떠밀지만 결코 만족을 만나지 못한다. 결코 채워지지도 달성되지도 않는 욕망일 뿐이다. 큰 돈 주머니를 찰 의약업계는 아픈 환자들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라며 돈도 던지고, 휴머니스트 코스프레도 벌인다. 하지만 실상은 내몰고, 지치게 만들고, 허황되게 만들며 결국 죽게 만드는 일들이다.

과학계의 부적절한 관행들이 점차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자의 이미지는 위에 적은 표상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재 과학자들도 그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심지어 미래의 과학자들도 그에 익숙해지며, 그 이미지에 자신을 가두는 일을 스스로 해내려 한다. 이는 과학계의 재생산 구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비과학적 요소가 더 큰 힘을 쓰는 구조일 뿐이다. 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의 자연스러움. 그게 지금 탈출구 없는 과학계의 모습이다.

 


일본의 2014년 8월 저널리즘

일본의 20148월 저널리즘

 

아 드디어 일본은 8월 저널리즘의 시즌이다. 오봉과 여름 휴가가 겹치지만 8월은 누가 뭐래도 일본에선 전쟁을 기억하는 시즌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등장하고 전쟁에 참여했던 노인들이 경험을 이야기하고, 후방의 아낙네들이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한다. 신문과 방송은 그 이야기, 기억, 증언을 담아 전하며 매번 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문과 방송은 벌써부터 그런 기사들로 넘친다. 아베가 저지른 집단 자위권 문제나 역사 인식 문제 탓으로 더욱 그런 것 같다.

아사히 신문이 852면에 걸쳐 위안부 문제를 들고 나왔다. 사실 일본에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신문이었다. 위안부 문제로 고초를 많이 겪기도 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무려 7꼭지를 들고 나왔다. 전체 기조는 언론의 설명책임(Accountability)의 강조다. 아사히 신문에 위안부 보도에 관한 책임을 묻고, 그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요청이 많다는 이야기다. 과거 아사히 신문이 위안부에 관한 보도를 할 때 저질렀던 표기오류, 인용오류를 인정하는 한편 오류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여성들이 전쟁에서 성적 서비스를 강요당한 것은 불변함을 밝히고 있다. 자신의 오류와 함께 변하지 않는 전체 기조를 밝힌 것이다.

언론 기사는 많은 경우 학술담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논란이 있는 학술담론을 인용할 경우 시간이 지나 오류로 밝혀지기도 해 기사를 바꾸어야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초기 한국의 위안부 관련 담론은 근로정신대 담론과 한데 뒤 섞여 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군위안부가 수 만 명에서 수십 만 명에 달하는 것처럼 논의되기도 했다. 군 위안부 관련 논문이 1990년대 이후에야 본격화되었는데 그 즈음에서는 그런 혼동이 일반적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기억과 오류 담론 등이 한데 뒤섞였다. 그런 가운데 언론에 전달되는 증언이나 코멘트 등도 그로부터 크게 자유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아사히 신문은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오류를 고백하되, 고노담화를 자신의 기조로 삼고 있음을 밝혔다. 그렇게 설명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NHK에서 영화 호타루를 다시 방영한다는 예고를 했다. 조선인 가미카제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영화다. 탁경현이 전쟁에 나가기 하루 전날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조국의 노래인 아리랑을 불렀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그 뻔한 이야기를 또 들려주겠다는 NHK의 심보가 궁금하기는 하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가미카제 특공에 참여했던 갑종비행 10기에 대한 다큐가 이미 방송되었고, 9일과 16일 가미카제 관련 다큐를 이어간다고 한다. 이 흐름은 아사히 신문과는 대조적이다. 이제 거의 죽음을 앞에 둔 용사들에 마이크를 대고 친구들에 대한 기억과 회한으로 눈물을 적시는 모습을 전한다. 그들이 전하는 말은 그리 소주아지 않다. 흑백 사진과 기록 필름 속에 담긴 낡은 젊은이들의 모습, 그리고 세상 하직을 앞두고 그를 그리워하는 노인들 그것만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에도 일본에 미치지 못하지만 8월 저널리즘이 있다. 식민지, 광복, 정부수립, 남북분단을 이야기하는 일정 흐름이 있다. 올해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이명박 정권 때 보여주었던 뉴라이트 역사관에 입각했던 수 많은 다큐멘터리들, 이번에도 큰 부끄럼없이 비슷한 보습을 보여줄까.  


먹어서 응원하자고?

먹어서 응원하자”. 놀랍게도 이 응원 문구는 곳곳에서 세계 공용어처럼 활용된다. 먹거리가 위험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누군가가 꼭 이 문구를 들고 나온다. 1990년 영국이 광우병으로 축산 농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다. 농무부 장관이던 존 검머씨가 방송에 등장해 햄버거를 삼키며 문제없으니 먹어서 농가를 돕자고 시민에 권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 동북 지방 농수산물이 팔리지 않자 똑 같은 응원 문구가 등장했다. “타베테 오엔시요우”. 아베 수상은 후쿠시마 쌀로 지은 밥도 먹어보였다. 그곳의 문어도 씹어 보였다. 몇몇 연예인들은 게걸스러울 정도로 그 지역 과일을 먹는 모습을 연출했다. 먹어서 응원하는 모습들이었다. 

이 응원은 농가, 지역을 향한 의리있는일처럼 보인다. 고통에 공감하며 아픔을 쉬 잊게 해주는 위로의 작업인 것 같기도 하다. 의리있어 보이고, 힐링시켜 주는듯한 이 응원은 액면 그대로 의미를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안타깝게도 그러긴 힘들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난 응원의 의미를 한 꺼풀만 벗기면 먹어서 돕자는 말은 무서운 정치적 속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무한 이윤을 내기 위해 공장형 축산을 택했고, 짧은 시간 내 덩치 큰 소를 만들기 위해 동물성 사료를 사용한 결과가 광우병 발병이다. 경제적 이득을 향한 인간의 무한 욕망이 재촉한 재앙이 광우병이었다. 후쿠시마 먹거리 사고는 강한 국가를 만들려는 일본의 경제, 방위정책 결과가 빚은 재난이었다. 그런데도 먹어서 응원하자고 나선 것은 재앙을 기억에서 밀어내고, 재앙의 원인을 증언하지 말자는 주장에 가깝다. 원인을 따지는 일은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망각하고 살자며 원인 책임자들에 면책을 주는 발언이다. 그래서 먹어 응원하자는 말은 위안이 아니라 정치적 언어가 되고 만다. 

덮어두자는 정치적 언어는 아픔을 배가시킨다. 증언과 기억을 멈추자는 언설은 말로 그치지 않고 가슴을 툭툭 치고, 애를 끓게 하는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변한다. 강제 성노예를 당했던 이들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일본의 작업을 우리가 폭력적이라며 분노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선 당장 아프더라도 인간을 위기에 처하게 했던 일들을 오히려 더 많이 증언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생략되면 인간은 비인간적인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기억은 사람을 인간답게 하고, 망각은 인간을 그 반대로 살게 만든다. 

가족을 잃고 고통을 받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도 먹어서 응원하자는 패거리가 나타났다. 더 많은 증언을 풀어내고, 더 오래 기억을 하자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 유족들 앞에 이제 그만하자고 떠든다. 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강짜다. 증언과 기억의 일단 정지를 요청하고 있다. 더 많은 증언을 이끌어내고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쪽에 이젠 까먹고 없었던 일처럼 살자고 권하고 있다. 그런 말을 건넬 자격을 가진 자가 있는 지도 궁금하지만 인간답지 말자고 권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까먹지 말자며 붙잡아도 시간 앞에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 기억이다. 그래서 어렵게 증언하며 기억을 붙들어 두려는 쪽은 늘 조바심이 난다. 우리가 인간이 맞는 지를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뜨렸던 홀로코스트조차도 잊혀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유가족들은 알고 있다. 남은 자가 가라앉은 자에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와 책무는 증언하고 기억하는 일이라는 걸 사무치게 느끼고 있다. 같이 손을 맞잡고 증언하고 기억하길 돕겠다는 말 외엔 어떤 것도 그들에겐 무례다. 까먹기의 선수인 일본을 향해 온 민족이 나서서 분노하던 우리 모습을 조금이라도 상기해보면 안다. 까먹자거나 없던 일로 하자는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폭력인지를


방송평론상 공지

방송작가협회에서 엄청난 일을 벌였네요.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실시하는 시민방송비평상과 함께 방송에 관심있는 이라면 누구든 한번 주목해야 할 상인듯 합니다. 

요코 왓킨스, 박유하

왓킨스의 <요코 이야기>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엉뚱한 관계로 만든다. 요코가 조선 땅에 와 있었던 것 자체가 식민정책 때문이다. 요코의 아빠의 직업이 무엇이었던 것과 관계없이 요코는 일본의 식민 정책 때문에 아빠를 따라 한반도의 북쪽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책이 실패로 끝나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야 했다. 한반도에서의 그의 운명은 철저하게 식민 정책과 관계있으며 그 결과다. 그를 부정할 순 없다. 그렇다면 그가 겪었던 한반도에서의 많은 일들도 그로부터 자유스럽지 않으리라.

 

북쪽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벌어졌던 많은 고통 또한 일본의 식민 정책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다. 애초 그게 없었으면 요코는 책에서 보았던 것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코는 이상한 인과론을 내놓는다. 결과를 키워 이야기하면서 원인을 축소하거나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요코가 경험했던 성폭력 위협이 있었다는 것이 책의 주요 골자다. 왜냐하면 왓킨스가 인터뷰에서 늘 밝히듯이 그의 책은 전쟁에서의 고통에 대한 내용이 주 골자다, 그래서 자신을 평화주의자라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애초 전쟁이 왜 생겼을까를 더 했어야 옳다. 원인을 빼놓고, 전쟁 중에 생긴 일을 키워서 말함으로써 ..

 

왓킨스의 경향은 박유하의 위안부 이야기하기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소녀가 아닌 위안부, 로맨스에 빠진 위안부, 가끔씩은 인생을 즐기는 위안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식민 정책이 존재했고, 그것이 갖는 권력 탓에 위안부가 되어야 한 인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덮지는 못한다. 강한 민족주의가 자아낸 문제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서 특이적 결과 몇몇으로 원인을 지워서는 안될 일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똑 같은 언법이 발견된다. 식민이 존재하고 여러 식민 생활이 뒤 따랐다는 언법이 아니라, 수탈론에서 제기한 것과는 다른 특이 생활들이 존재했다며 아예 수탈 정책 자체를 묻어두려 한다.

 

가족적 유사성이란 용어가 있다. 가족 개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 용모 등을 지닌다. 모두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한 가족 개개인은 특이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하지만 가족을 한 데 모아 찬찬히 뜯어보면 어딘가 닮은 곳들이 존재한다. 각기 특이하지만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가 가족적 유사성이다. 스포츠를 예로 들어보자. 농구는 자신만의 독특한 룰을 가지고 있다. 한 골에 2점씩 기록하니 다른 것과 차별성을 가진다고 할 수 밖에. 핸드볼은 발로 차선 안되고 한 골에 한 점씩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인원수가 벌이는 그만의 독특한 룰을 가지고 있다. 탁구와도 다르고, 축구와도 다르다. 그러나 그 운동 경기 대부분은 가족적 유사성이랄 만한 공통점을 지닌다. 점수를 많이 내는 쪽이 이긴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르면서 닮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용어일 것이다.

 

식민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다양한 경험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수탈론, 민족주의 사관은 그 다양한 경험들을 통제했다, 언제나 일반론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일본은 한국을 등쳤고, 수탈했고, 겁탈했으며 모든 것을 뺏아갔다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펴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경험을 내세운 새로운 주장들이 등장하고 당황하게 된다. 식민 기간에도 애정은 늘 꽃 히고 있었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식민지 교육의 줄을 타고 큰 부를 일구었고, 식민 행정에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전에 비해 질병 피해를 덜 받게 되고 등등. 전에 없는 다양한 경험들이 등장하자 일괴암적이던 식민지 담론은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각기 달라보이는 삶이었더라도 그 삶은 궁극적으로 결정지워주엇던 것은 식민이라는 조건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무리 달라 보여도, 특이해보여도 결국 그 일이 있게 만든 최종 심급은 식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작은 이야기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다양한 삶들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역사 적기에 대해 특별한 반감을 가지고 있진 않다. 오히려 새로운 역사 적기라는 점에서 거대 서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편이다. 그러나 종종 포스트 주의 담론에서 찾을 수 있듯이 특이, 특수가 거대 서사에 도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스스로 거대 서사의 자리에 올라서는 위험에 대해선 경계하려 한다. 왓킨스는 요코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키워 이야기하고 그것을 전쟁이 주는 상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이전의 식민, 전쟁으로 인한 한반도의 상처에 대해선 눈을 감는다. 박유하가 위안부를 설명하고, 정대협을 말하려는 방식도 유사해 보인다.

 

일본 리츠메이간 대학에서 721릴에 왓킨스의 책을 두고 <패전, 인양, 성폭력>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한다고 발표했다. 심포지엄을 소개하면서 논의를 <종군위안부문제>로 까지 연결시키려 하는 의도를 전하고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강연자 중 한 사람이 박유하 교수다. 정말 위에 언급한 방식의 논의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들을 할까?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 대학교 시내 캠퍼스 213호실.

2014721, 14:00 - 17:00. 


競合するジャーナリズムの公共圏

競合するジャーナリズムの公共圏

―韓国のニューメディア[1]を中心に―

                       


 

韓国のジャナリズム地形急激変化がおきている。保守政権登場代案メディアえ、モバイルプラットホムの拡張でメディアの利用形態きくわっている。この変化批判的める学者は、「権威主義的商業主義メディア時代」と規定する。 ニュメディア市場拡張でメディア産業量的膨張したが、メディアから市民恩恵きくっているという評価である[2]一部の言論学者中心にメディア公共性フォラムが結成されるほど、公営放送をはじめとするメディアの公共性衰退明瞭える[3]

メディアの技術発達大衆日常み、どのよりも華麗にメディアの恩恵ける時期だえるとき公共圏荒廃した事実をどのように説明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か20144発生したセウォル号事件遺族は、公営放送歪曲報道抗議してKBS進入しようとした。KBSじないので大統領がいる大統領府かった。翌朝、KBS社長てきて真実報道をすると約束した後に解散することがこった。遺族自分たちを代議するメディアがないといた。むしろ、財閥であるサムスンと密接関連がある中央日報運営するケブルチャネルのjTBC最大限信頼し、遺族っていたすべての情報jTBCに渡した[4]メディアは豊富になったが、大衆代議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いとし鬱憤溜めている

日本でマスコミを「マスゴミ」と卑下するように、韓国では記者を「キレギ[5]」としてべつする。以前からジャナリストに与えられる悪いあだ名があったが「キレギ」は最悪だといえる。伝統的にニュス、時事プログラムにする信頼けた公営放送MBCは、いに評価けている[6]信頼する媒体ねる世論調査で、ニュスを生産せずに伝達するばかりであるインタネットのポタルサイトの名前がったりもする。 KBS相変らず信頼ける媒体められるが(2013年調査38.7%)先立って説明した遺族抗議訪問などにらしてみれば、他の選択肢がなく選択した結果でもある。

これ以上の信頼度下落に耐えられなかったジャーナリストは、公営放送を中心に言論に対する政治的介入に対して強力に抵抗した。公営放送MBCは、2012130日から717日まで170日間にかけてストライキをした。KBS,YTN(ニュース専門ケーブルチャネル)も同時ストライキを行った。政権が選択した天下り人事によって放送局の社長が決まることに抗議し、放送の政治的独立性を確保しようと抵抗した。だが、これらのストライキは成功しなかった。抗議を受けた側では、そんなことがないということを見せるために、ストライキした側を処罰した。処罰は一種のアリバイづくりのために避けられない。最後まで抗議した側は懲戒を受け、変化の可能性がないと考えたジャーナリストは自発的に放送局を辞めた。解雇記者、局内の人事で不利益にあった人が辞職し、その数は増え始めた。

大衆は彼らの抵抗を積極的に支持して(キャンドルデモ、抗議訪問などで)積極的に支援した。だが望んだ結果は出てこなかった。大衆には選択肢が二つあった。冷笑してメディアに対する期待を捨てることが一つ目だ。李明博政権以後、メディアのこのような状態に慣れていた大衆は大きい期待をしなかった。大衆が介入できる二番目は、独立的で代案的なメディアを設立することだった。もちろん、最初の選択肢を選んで、ジャーナリストを「キレギ」と呼んで諦める方法もあったが、以前よりは容易に代案メディアを作ることができる良い実例を基盤とした動きがあった。20114月から201212月まで間に存在した代案メディアに注目した。では、20114月にいったいどんなことがあったのだろうか。

インターネットのパロディ新聞代表、元国会議員、雑誌記者、そして元放送局プロデューサーが集まって現職大統領を始終一貫パロディにするポッドキャスト放送を始めた[7]。「私はみみっちい奴だ(나는꼼수다)」は2011年最大ヒット作として知られる程人気を呼んだ。彼らは、自らの放送をモバイルやウェブで聞けるようにポッドキャストを活用した[8]

一週間に一度放送をしたが、これらの放送のダウンロード数が全世界で1位を占めるほど爆発的人気を得た。公開放送、海外巡演をし、想像もできないほどのファンダム(fandom)を享受することもした。パロディが主な内容だったが、現大統領の不正を告発するジャーナリズムの役割を担い続けた[9]。既存のメディアやジャーナリストは、「私はみみっちい奴だ」と対比されてより一層みずぼらしくなっていた。

ポッドキャストを活用した「私はみみっちい奴だ」の成功は多くのジャーナリストを刺激した。放送局から解雇された人々・自発的に退社した人々と、新しくて信頼でき、自身を代議してくれるメディアを探していた大衆とが、ポッドキャストを通じて出会うことになった。韓国大衆の75%が、モバイルフォンを所持しているという点を勘案すれば、モバイルプラットホームはすでに居間に置かれたテレビの水準である。ポッドキャストはウェブ上でも利用が可能で、クロームキャストのおかげでテレビでも視聴が可能だ。このように、多くの独立的なポッドキャスト放送が始まる。市民が財政を支援し、報道機関から追い出された専門記者、プロデューサーがニューメディアを活用して独立的な新しい放送局を立ち上げる。「ニュース打破[10]」「国民TV[11]」「告発ニュース[12]」が代表的だ。

「ニュース打破」は、放送局の元および現職ジャーナリストが集まって深層取材報道をする専門放送だ。国内報道機関では唯一、グローバル調査ジャーナリズム・ネットワークに加入している。代表のキム・ヨンジン記者はKBSの代表IR専門記者であり、アンカーを引き受けるチェ・スンホPDMBCの看板深層プログラムだった<PD手帳>出身だ。他にもKBS,MBC両公営放送のエリート記者たちが放送局を出て合流した。20147月現在、36,140人の会員が財政支援をしている。 スタートと同時に既存人員の他に新入記者を選抜し、現在、1週間に2回アップロードをしている。 ポッド・キャスト、ユーチューブ、ポータルサイト、アプリケーション等を通して視聴が可能だ。第11回宋建鎬(ソン・ゴノ)言論賞など韓国の多くの言論賞を受賞した。

「国民TV」は、国内最初の協同組合放送だ。20121219日の大統領選挙が終わった後、選挙と韓国社会の監視機構の非公正性に不満を抱いた人たちが協同組合として設立した放送だ。初めにはポットキャストのラジオ放送から始まった。引き続き18時間ストリーミングサービスでラジオ生放送を実施した。201441日から毎日午後9時から1時間の映像ニュースを始めた。「私はみみっちい奴だ」のキム・ヨンミンPDYTNから解雇されたノ・ジョンミョン記者、国民日報から解雇されたチョ・サンウン記者、そして新しく採用した新入PDなどが製作に参加している。20147月現在、組合員数は26,336人である「ニュース打破」が深層性に焦点を合わせた反面、「国民TV」はMBCおよびKBSニュースの代案の役割を自認している。

「告発ニュース」は2013年にMBCから解雇されたイ・サンホン記者が作った放送だ。この放送は主に告発に焦点を合わせている。既存の放送が簡単に流してしまう事柄に密着して視聴者たちが気がかりなことを解こうとする。特に、政治権力にいつでもマイクを突きつけて質問を投げかけるスタイルを得意としていて、少ない人材を勘案して特定の事案を持続的に取材・報道する長所を持つ。現在10,470人が後援している。

「ニュース打破」は「99%市民の公営放送」というスローガンを使う。創立したジャーナリストたちが、公営放送から解雇されたり退職したので、公営放送の精神をまともに生かすことに焦点を合わせているように見える。国民という用語をタイトルに付けている「国民TV」は、政治と資本からの独立を前面に出して強調している。「告発ニュース」は聖域なき報道を志向するというスローガンを掲げた。この三つは、すべて現在の公営放送が欠如していると見られる公営性、独立性を強調して市民の代議をすることに焦点を合わせている。この他にも、時事問題解釈放送、外交安保専門放送などいわゆる公共事案(public affairs)を開設する多様なポッドキャスト・ジャーナリズムが活動中だ。これらはほとんどの上記で紹介した媒体から影響を受けたものであると言うことができる。

過去の代案的なジャーナリズムに比べて、これらに対する信頼度は相当高い方だ 韓国の代表的ジャーナリズムである「オーマイニュース」が、市民が直接報道する市民ジャーナリズムを標榜したとすれば、この代案的独立メディアは、専門放送人が市民を代議することを選んだ。専門性、独立性、そして代議性を包括して信頼度を高めた。公共圏内の信頼度競争で先んじているので、既存ジャーナリズムに緊張を作っている。これらがフェイスブックやツイッター、アプリケーション等を通して爆発的な普及力を持つにつれ、すぐに大衆によって比較されるという点で緊張は避けられない。20146月にKBS社長を退陣に追い込んだゼネストの背景にも、このような緊張が大きい役割をしたと考えられる。

後援者あるいは組合員として報道機関に発言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市民は代議を受けられるという自信を持つようになった。数多くの情報提供があり、既存の放送局との情報競争で勝るという成果を上げることもした。代案的であり独立的なメディアは、市民に政治的効能感(Political Efficacy)を提供している。それだけでなく、豊富な情報提供などを基盤として特ダネをスクープすることによって「議題設定者」の役割を遂行した[13]

1988年に国民株新聞として誕生した『ハンギョレ新聞』、2000年にインターネット市民メディアとして誕生した「オーマイニュース」、そして2011年以後に新しく誕生するポッドキャスト。韓国ジャーナリズムの公共圏には、ほぼ10年周期で新しい形態の注目するべき代案的で独立的なメディアが誕生した。紙からインターネットへ、インターネットからモバイルへ移る技術的変化を基盤としている。また、それぞれは政治的地形変化に影響を受けて作られたという共通点を持つ。そして、言論専門職に対する社会的認識の変化ともかみ合っていたりもする。代案的メディアの登場は、このようにジャーナリズムを取り囲む多様な場(field,)が重複決定(Over-determination)しながらなされる。代案的ジャーナリズムの登場を韓国ジャーナリズム環境の変化兆候として読むことは、そうした点で正当に見える。



[1]ここでは、メディアを「ジャーナリズム性を持ったメディア」と規定する。

[2]PR会社のエデルマン(Edelman)による信頼度地表調査韓国メディア信頼度2008年以後60%55%50%44%というように下落記録する。

[3]彼・彼女らは、‘Rich Media,Poor Democracy"というスロガンの下、李明博政権言論弾圧反対してフォラムを結成した。

[4]ウォル号事件間、jTBC注目されるチャンネルになった。MBCアナウンサであったソンソッキ(손석희)がjTBC報道担当社長してアンカをしているそれだけ既存ジャナリズムにする不信高まっている

[5]「キレギ(가레기)」は記者(기자)とゴミ(쓰레기)合成語である

[6]韓国記者協会ジャーナリスト対象に行った2013年調査で、二大公営放送局の一つであるMBC影響力0.7%信頼度0.5%という評価けた。

[7]彼・彼女らは自分たちの放送を「閣下憲政放送」と称した。李明博大統領の政治スタイルに対するパロディを通じて、大統領が国家経営を私的事業と感じていることを表わした。

[8]ポッドキャストは通信の領域に属するので地上波、ケーブル放送が受ける内容審議を受けない。放送内容は事後審議を受けることになっているが、ポッドキャスト放送は放送法において放送として分類されておらず、審議の対象にならない。

[9]2011年全国言論労働組合は「私はみみっちい奴だ」を第23回民主言論受賞者として選定した。既存メディアがやり遂げられなかった役割をやり遂げたことが選定理由であった。

 

[13]「ニュース打破」は2013615日に記者会見を行い、国際調査報道ジャーナリスト協会(ICIJ)を通じて、単独で取材した租税回避財産を公開した。新生報道機関が記者会見をし、既存報道機関がそれから情報を求める珍しい風景が広がった。


요코 이야기, 제국의 위안부

<요코 이야기> <제국의 위안부>

 

 

<요코 이야기>란 책이 있었다. 지금 국내 서점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책이다. 출판사가 책을 모두 수거해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이 책은 영어로 적은 소설이다. 일본인이었다 미국 시민이 된 저자가 자신의 어릴 때 경험을 옮긴 자전적 소설이다. 미국 동부의 초등학교 추천도서에 들었다 한국계 학생과 학부모의 반대로 도서목록에서 탈락한 도서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문제가 되자 한국에서 번역된 <요코 이야기>는 출판사에 의해 전량 수거되는 운명을 맞는다.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씨는 원래 해방 전 조선의 나남에서 나고 자랐다. 해방과 동시에 소련군이 진주한다는 소식에 서울로 탈출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 아녀자를 겁탈하는 조선인을 만나는 등 온갖 수모를 겪는데 그 내용을 소설에 담았다. 일본 가해자, 조선 피해자라는 일반적인 역사 서술을 거슬러 적고 있다. 자신의 기억에 기반해 조선 가해자 일본 피해자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이 책은 숱한 반대를 만나고, 학교에서 밀려나고, 급기야는 서점에서 수거되는 일을 겪었다. 왓킨스씨는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전쟁의 아품을 그리려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인을 악당으로 몰려고 한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경험을 기반으로 했기에 왜곡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유사한 역사 적기 논란이 국내에서 일고 있다. 이번엔 <제국의 위안부>란 책이 그 주인공이다. 이 책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위안부 역사를 거스른다. 일본의 위안부 모집, 강제 위안의 고통, 일본의 책임 및 사죄 요청이라는 줄거리에서 벗어나 있다. 저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개인 기억을 추적한 끝에 다른 역사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종군 위안부를 달리 이야기하는 방식도 있음을 할머니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려 했다. 이어 나름의 역사 기술을 통해 일본과의 화해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2013년에 출간된 당시부터 지식계 내에서 논란이 오갔다. 시간이 한참 지나 이번 달에 저자와 출판사를 상대로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소송을 걸었다. 공분한 쪽에서는 저자가 재직 중인 학교로 항의 데모의 발길을 옮기고도 있다 한다. 대중 매체를 통해 빗나간 역시 인식이라는 평단의 비난도 줄을 잇는다. 마침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중군 위안부 발언과 맞물려 사회적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진의가 왜곡되고 있다고 반 비판하며 언제든 대중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할 준비를 하고 있어 앞으로 논란은 더 지속될 전망이다.

역사 기술을 둘러싼 두 사건은 역사 문제가 언제나 사회적 관심이 되지만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 어려운 일임을 알려주고 있다. 비록 한 사건은 해결된 듯 보이지만 그것 역시도 잠정적인 결론에 불과하다. 왓킨스씨는 여러 결정에 여전히 승복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학교에 의해 다시 추천도서로 채택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제국의 위안부> 사건도 현재로선 비판 쪽의 손이 올라가는 듯 보이지만 저자가 그에 불복하고, 그에 대한 지지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논란은 장기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 적기를 놓고 온 시민사회가 동참하고 비판, 반비판하며 참여하는 모습은 그 비용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논의 주체가 학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역사 논란에서 늘 우려되는 일이 하나 있다. 공권력이 역사 논의에 끼어드는 일이다. 힘을 앞세워 어느 한 편을 들거나 심판자를 자처하는 일을 공권력은 자주 저질러 왔다. 일테면 교과서를 국정교과서 제작을 독점하려 한다든지, 일부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강권하는 그런 일이다. 심지어 시민사회의 토론 주체에 재정적 지원을 편파적으로 일삼는 일도 그에 해당한다.

그것이야말로 사회를 토론하는 능력마저 갖지 못하게 하는 가장 미개한 역사 정책이다. 충분히 토론하는 그런 기회야 말로 민주주의 초석이고, 역사적 해석을 놓고 사회가 일정부분 합의를 찾아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야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 해석을 익히며 역사의식을 갖는다. 그 과정을 생략하는 민족이야말로 미래가 없다고 선인들은 늘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이 글은 2014년 6월 <경인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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