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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지현이 일본 아사히 텔레비전 뉴스에 직접 출연한 적이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일본 상영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아사히 TV ‘뉴스 스테이션’의 앵커였던 구메 히로시가 전지현에 친근감을 드러내려 전지현의 머리를 몇 번 쳤다. ‘뉴스 스테이션’과 구메 히로시가 그 때부터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본 텔레비전 뉴스의 ‘엽기성’도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아나운서 출신인 구메 히로시는 뉴스의 엄숙함을 떨치는데 혼신을 다했다. 전지현을 뉴스 생방송 현장에 불렀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지 않은가. 그가 마지막 방송에서 스스로에게 포상한다며 맥주를 벌컥 벌컥 마셨음은 파격의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연예인 출신들이 일본 민방의 뉴스 진행을 이끌고 있음을 볼 때 대중에게 다가가려던 그의 시도는 아직 지속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구메 히로시 효과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인기의 정점에 섰던 때는 1990년대였다. 55년 체제의 산실인 일본 주류 세력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구메 히로시는 무너져가던 일본 주류 세력을 공격하는데 주력했다. 자민당, 대기업, 정부 관료로 꾸려진 삼각동맹, 즉 주류 세력을 때려댔다. 거품 경제가 막을 올리면서 우울해하던 일본 사회에 카타르시스를 전해줄 테마를 절묘하게 찾아냈던 셈이다. 아사히 텔레비전의 ‘뉴스 스테이션’이 주류 세력을 공격하고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아사히 신문 등과 같은 일본의 주류 언론이 주류세력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일본의 주류 신문들은 그 세력을 감시하기는커녕 촉매역할을 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같은 뿌리에서 나온 아사히 텔레비전이 그 동맹을 공격하고, 카타르시스를 전했으니 병주고 약주고 한 꼴이 아닐 수 없다.
구메 히로시가 만들어 제공한 카타르시스는 일본 사회에 독이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시원시원한 공격으로 시민들의 갈증을 씻어주었지만 시민들의 손엔 냉소주의 외에 남은 것이 없었다. 냉소주의는 정치를 더더욱 멀리 하게 만들었다. 사회를 고칠 희망을 죽이는 독이 되기도 했다. 구메 히로시와 ‘뉴스 스테이션’의 성공은 일본 시민사회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전지현의 머리를 쳤다는 사실 말고 우리가 구메 히로시의 인기를 통해 배워야 할 부분들은 없을까. 정치권력, 경제권력 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 권력은 끄떡없다는 사실, 그것이 첫 번째 배움일 거다.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경우엔 더더욱 그러할거라는 사실을 꼭 알아두자. 견제 받지 않는 언론권력은 언제나 염치없음도 기억해두자.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안면을 바꾸는 몰염치를 알아두자. 무엇보다도 견제 받지 않는 언론권력은 사회의 희망마저 빼앗아 갈 수 있음을 아사히 계열의 언론을 통해 익혀두자. (이 글은 한국일보 7월 2일자에 실렸습니다).
일본에서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 한다. 한국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고,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 사람도 많이 늘었다. 한국 음식의 인기도 놀라울 정도다. 덕분에 한국 관광객들은 일본 어디서나 우쭐해볼 수 있는 그런 기분도 가져 본단다. 정말 예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한국인을 이제 ‘나쁜 타자’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일까? 혹 다른 타자들을 찾아서 그 범주 안에 가둔 것은 아닐까? 아직 한국은 완전히 그 나쁜 타자 범주에서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혐한류, 혐한론 등이 아직 등장하는 것을 보면 오래 전부터 있던 한국 이미지가 쉽게 씻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숨어 있다고 그렇게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욘사마와 함께 서울, 춘천, 남이섬 등이 일본인들의 안방에 들어가자 한국은 곧 서울과 그 근교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전에는 몰랐지만 화려한 도심이 있고, 그곳을 벗어나면 자연이 있고, 또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리면 일본인들이 살았던 먼 과거가 있는 그런 곳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본인으로서는 그야말로 한국의 재발견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을 재발견하고, 서울과 그 근교로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의 또 다른 한 군데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오랫동안 잘 구분되지 않던 북한(키타 조센)이 가깝게, 나쁜 이웃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일본인 납치 문제, 핵 문제 등으로 인해 나쁜 이웃이 뻔해지고, 그 나쁜 이웃과 가까운 일본 내 자이니치에 주목하게 된다.
북한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데 큰 기여를 한 정대세 선수를 보자. 그는 현재 일본 J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국적은 북한(북조선)으로 되어 있어 국가대표 경기는 북한을 위해 뛴다. 그의 형님은 현재 한국의 프로축구 2부팀인 험멜의 선수로 활약 중이다. 그의 형은 한국 국적을 가진 모양이다. 그러니까 같은 집안에서도 서로 다른 국적의 식구들이 한데 어울려 산다. 심지어는 한국적, 북한국적, 일본국적, 혹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조선국적 등등을 나눠가진 식구들도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한 가족 안에서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짐을 이해하는 대신, 어느 한 쪽을 두드리며 새로운 나쁜 타자 부르기를 행하고 있다. 북한, 북한인들, 북한 국적을 가진 자이니치들, 그들이 세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그들이 입는 옷들(특히 치마저고리) 등등을 나쁜 것으로 범주화하고 있다. 한류로 인해 서울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생긴 일이다.
일본의 북한 때리기, 한국 좋게 보아주기는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남북한 모두에게 불행한 사건이다. 일본이 북한에 적개심을 보일수록, 북한을 견제해야 한다는 정서가 더 커질수록 일본의 군사력 증대 등으로 인한 동북아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오랜 수구 정당인 자민당이 곤경에 처하면 처할수록, 그와 유사한 보수 정당이 더 선명성을 얻고자 노력할수록 북한을 나쁘게 만들기는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긴장은 더욱 높아질 거라는 말이다. 한류 이야기하려다 너무 멀리 가버렸다. 하지만 대중문화도 텔레비전 언저리에서만 말할 것만도 아니다. 동북아 정세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연결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당연히 가능하다. 한류를 더 연장시키고, 그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면 이제 역사 이야기도 그 안에 좀 담아야 할 것 같다. 일본의 교과서가 역사를 비켜갈수록, 일본 사회가 역사를 잊고 긴장을 불러일으킬 군사강국으로 갈려고 할수록 역사를 담은 한류를 좀 퍼트리면 어떨까 싶다. 다행히 일본은 어느 한 곳에 미치면 그곳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들이라도 한번 겨냥해보자. 욘사마 못지않게 관심가질 그런 캐릭터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정대세와 그 형님이 정이세의 이야기쯤이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도 하건만. 일본에 대해 가진 막연한 적개, 무시, 혹은 친근감을 떨치고 진짜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궁리를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서로가 너무 많이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한일 정상 외교를 앞두고 욘사마가 청와대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민영방송 허가 요청에 대한 GHQ의 입장은 단호했다. 민영방송이 일본 민주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며 거절했다. 민영방송 계획이 우익 인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탓이다. 실제로 민영방송을 추진하던 후지야마와 후나다 양씨는 1946년 전쟁협력 혐의로 공직으로부터 물러난다. GHQ의 자문기관이던 '연합국 위원회'에서도 민영방송설립 불가를 천명했다. 민영방송이 오히려 일본의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할 거라는 발표까지 내놓았다. 강한 반대에도 마츠마에 체신원 총재는 뜻을 접지 않았다. 후지야마와 후나다 등 우익인사가 빠진 자리를 광고회사인 덴츠의 요시다 상무가 메웠다. 요시다는 마츠마에를 대신해 전국의 신문경영자들을 만나 신문방송겸영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물론이고, 인재확보까지 돕겠다며 신문경영자들을 설득했다. 집요한 노력 탓이었던지 드디어 GHQ는 민영방송설립안을 받아들이고, 1951년 16개사에 예비면허를 허가한다. 일본의 신문과 방송겸영 역사가 시작하는 순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민영방송, 신문방송겸영 체제는 탄생했다. 우익 정치권력, 대자본, 신문경영세력이 합심한 결과다. 이후 바로 이들이 일본의 여론을 주도해왔다. 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른 역사의식을 가진 채 역사를 망각하기도 하는 일본을 이끌어 왔다. 남의 땅을 자기 것이라 우기고, 군 위안부는 자작극이라 망언하며, 역사를 입맛대로 뜯어고치기도 하는 그런 일본을 이끌어 왔다. 미디어 관련법의 제, 개정 논란과 60 여 년 전 일본을 겹쳐본다. 너무 흡사한 장면이지 않은가. 등장인물, 주제, 심지어 대사까지 닮아 있다. 미디어 관련법은 미디어 사안으로만 그치진 않는다. 한 사회의 양심, 정의, 미래와도 닿아 있는 막중한 사안이다. 일본의 과거, 그리고 현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일본이 모범이 아닐진대 그 길을 피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지혜를 요청해본다. (이 글은 한국일보 6월 18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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