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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현장도 비슷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IPTV로 대표되는 거대 유통망이 플랫폼의 이름으로 방송에 들어서면 방송계에서 절대 강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책은 IPTV의 절대적 힘을 제어할 고민 없이 그것을 육성,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할 뿐이다. 클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기업형 슈퍼마켓을 방임하는 태도를 읽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뻔히 예견되는 유통의 힘, 횡포가 드러나는 곳은 또 있다. 영화판이다. 지난 주 장나라 주연의 '하늘과 바다' 제작자가 극장이 벌이는 교차상영 횡포에 반발하며 영화를 거둬들였다. 특정 영화를 여기저기 끼워넣고 상영하는 탓에 관객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항의였다. '퐁당퐁당 상영'이라고도 말하는 교차상영으로 저예산 한국 영화가 상영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하고 차별을 당한다며 폭발한 것이다. 이어 '집행자'라는 저예산 영화의 제작진이 교차상영에 항의하며 삭발을 단행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주연배우 조재현은 항의성 눈물로 기자회견을 했다. 관객이 영화를 평가하기도 전에 유통에 불과한 극장이 영화를 평가해버리는 횡포에 영화인들이 폭발한 사건이다. 입소문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오랜 관행에 비추어 보면 이를 횡포라 해도 과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영화인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오래 전이지만 여전히 거대 유통의 힘에 정책은 수수방관해왔고 급기야 '하늘과 바다' '집행자'의 극한 사건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틈엔가 크지 않으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엄청난 공을 들였다 하더라도 모든 작은 것은 외면당한다. 기업형 슈퍼마켓, 플랫폼 방송사업, 거대 영화 유통업은 그동안 지역경제,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오랫동안 차근차근 형성해둔 성과를 큰 덩치로 일거에 먹어버리려 한다. 정책이 수수방관하거나 추동해주고 있으니 날개를 단 듯 전 영역으로 대물들이 진격해오고 있다. 대물 숭배주의가 가져올 사회적 파탄을 여러 국가가 이미 경험하고 있다. 대물이 작은 것을 챙겨줄 것이라는 '떡고물 경제론'도 파산 직전에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그런 타산지석 교훈이 통하지 않고 대물 숭배주의가 정책으로 더 세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작기 때문에 억울한 눈물을 훔쳐야 하는 일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 지역경제든, 방송판이든, 영화판이든 예외가 없다. 골목 어귀에서 피켓을 들어야 하고, 영화 필름을 극장으로부터 거둬들이고, 삭발을 감행하고, 단식을 행해야 정책이 조금이라도 귀를 열 거라는 문법에 익숙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모든 작은 것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밖에 없음을 학습해가고 있다. 정책은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치자며 수많은 립 서비스와 임시방편을 내놓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의 골목, 극장, 텔레비전 화면 모두 전보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을씨년스러운 모순적 기운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골목, 자신의 문화판에 더 애정을 가져왔던 작은 것이야말로 지금의 대물이 있게 만든 기반이었다. 하지만 대물은 되돌려주기는커녕 그를 괄시하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정책이 대물을 교정하고, 작은 것에 힘을 불어넣어 그 존재를 확인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11월 13일자 한국일보에 실렸습니다)
임장혁 전 <돌발영상> 팀장은 지난 18일 사측으로부터 '정직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구본홍 사장 시절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은 이후 '복직-대기발령-복직-정직'의 다사다난한 과정을 밟고 있는 셈. 지난 5년간 <돌발영상>을 제작해온 그뿐 아니라 YTN을 대표하는 프로그램 <돌발영상> 역시 '폐지'와 '복귀'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YTN 사태를 돌이켜보면 <돌발영상> 자체가 사건의 중심이었던 것 같다"고 평했다. 실제로 YTN 안팎에서는 구본홍 전 사장의 취임과 퇴임 모두 <돌발영상>에 관련돼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임장혁 전 팀장은 "이번 징계위원회에서도 '징계 사유'는 아니라면서도 대부분의 질문이 <돌발영상> 내용에 집중됐다"며 "과연 이번 징계가 회사의 의지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임장혁 전 팀장과 정유신, 정병화 기자 등으로 이뤄졌던 기존 <돌발영상> 제작진은 YTN 사태 동안 각각 해고, 정직, 인사이동 등으로 모두 흩어졌다. 앞으로 <돌발영상>은 기존의 '엣지'를 살려갈 수 있을까. 임장혁 팀장은 "<돌발영상>은 기계적 중립성과 양비론이라는 기존 언론의 병폐에서 벗어나 나름의 원칙으로 사안에 접근했기 때문에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이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22일 서울 옥인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열린 대담 전문.
"YTN 사태의 중심엔 <돌발영상>이 있다"? 원용진 : 그간의 YTN 사태를 돌이켜보면 <돌발영상>이라는 것 자체가 사태의 중심이 아닌가 싶다. 구본홍 전 사장이 낙하산으로 YTN에 들어온 것도 <돌발영상>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사건의 연결고리가 <돌발영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과한 해석일까? 임장혁 : 나는 그런 의심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년 3월에 '마이너리티리포트'가 방송되고 한차례 홍역을 겪었는데 그 직후에 구본홍 씨가 낙점되자 '<돌발영상> 잡으러 내보냈다더라'는 말이 나왔다. 물론 나는 우스갯소리로만 들었다. 또 얼마 전 구본홍 씨가 사퇴했을 때도 공교롭게 그 직전에 이명박 대통령의 이문동 재래시장 방문 등을 소재로 <돌발영상>이 몇 개가 나갔다. 이에 '<돌발영상> 때문에 사퇴한 거라더라', '더 세게 <돌발영상>을 장악하려고 한다더라'는 농담이 나왔다. 설마 권력이 일개 케이블채널의 일개 프로그램 PD까지 단속하려 할까. 원용진 : 내부적으로 <돌발영상>의 평가가 어떤지 궁금하다. <돌발영상>이 갖는 저널리즘으로서의 가치와 YTN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다른 문제일 것 같다. 혹시 '저널리즘으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브랜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기성 언론에 비해 '이단'으로 보거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지 않았나.
원용진 : 그렇다면 <돌발영상>은 한두 사람이 찍은 것이 아니라 전사적인 작업인 것으로 이해해야할 듯하다. 이렇게 가장 브랜드 파워가 있고 전사적인 노력이 들어간 프로그램을 경영진에서 거부한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임장혁 : 나 역시 '어떻게 이해해야하나'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08년 낙하산 반대 투쟁이 벌어지기 직전인 2007년 12월에 회사에서 사원에게 주는 가장 큰 상인 YTN 대상을 <돌발영상> 제작진이 받았다. 그러고는 7개월 만에 <돌발영상> PD 3명 중 한 명이 해고되고 나는 정직 6개월이 나와 프로그램은 중단이 돼버린다. 이번에 '정직 2개월' 조치를 내리면서는 "<돌발영상>은 지난 6년 가까이 YTN의 대표 프로그램이고 자랑이었으나 최근 한두 달 사이 공정성을 잃고 편향됐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에 대해 '이것이 징계 사유인가, 제작 과정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는가'라고 따지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징계위원회에서는 상당부분 <돌발영상> 내용에 관한 편파성을 물어봤다. 그래서 이번 징계 배경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한 징계가 과연 회사의 의지인지 아니면….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 수락 연설을 하면서 자기를 반대했던 이들에게 던진 메시지 중에 '나는 여러분의 대통령도 되겠다'는 말이 있다. 그런 것처럼 지지층만 끌어안으려는 작전이 아니라 더 넓게 포용하는 것이 중도 서민 정책과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한다. 너무 주변에서 대통령 홍보에 날카로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통령 스스로도 '친 서민 이미지' 등을 자신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것을 잘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세계 시장에 내놔도 독보적인 '<돌발영상> 포맷'" 원용진 : 최근 세계 프로그램 시장의 트렌드는 '포맷'이다. 프로그램보다는 '포맷'을 사와서 현지화 하는 식이다. 만약 <돌발영상>을 포맷 시장에 내놓으면 잘 팔릴 것이라고 자평하는가? 그만큼 독창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임장혁 : 감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돌발영상>에 관한 가장 인상 깊었던 평가 중 하나는 미국에서 언론을 공부하는 유학생이 보낸 격려 편지에 나온 것이었는데 그는 미국의 여느 언론사에 <돌발영상>과 비슷한 형태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전무하더라고 했다. 정치인들을 조롱거리로 삼고 희화화하는 형식은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외모나 그 인물의 이미 알려진 말실수를 꼬투리 잡는 식일뿐 <돌발영상>처럼 보도를 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세계 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였다. 애초에 노종면 위원장이 이 포맷을 개발할 때 혼자서 착안을 해낸 것이었다.
원용진 : 노종면 위원장이 처음 <돌발영상>을 만든 이후 성장 혹은 진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왔나. 구성원들은 <돌발영상>을 어떻게 바꾸어왔나. 임장혁 : 처음 <돌발영상>이 제작된 배경을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현장을 겪어본 기자들은 누구나 기성 보도로는 '실체의 10분의 1도 전달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절감한다. 어떻게 하면 실제로 있었던 일을 왜곡이나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다가 보도되지 않은 영상을 자막과 함께 내보낸 것이 처음 시작이었다. 이후 <돌발영상>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음악도 넣고 컴퓨터 그래픽도 넣으며 지금의 포맷이 잡혔다. 그런데 시청자들에게 있었던 사실 그대로 전달을 해준다는 형식 자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비판 기능이 생기게끔 하는 듯하다. 전시성 행사와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정치 관행 속에서 '날것'을 공개하자 그러한 과장과 허위가 드러나고 위선이 까발려지는 효과로 나타났다. 우리 제작진은 이러한 비판적인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을 차단하기 위해 애를 썼다. 어떤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이든 진짜 의도가 가려지는 폐해는 막고 또 명예 훼손이나 지나친 정치 희화화는 자제하기 위해 고민해왔다. 나름대로 수위 조절을 잘해왔다고 평가한다.
원용진 : 내가 <돌발영상>을 보며 놀라는 부분은 편집 테크닉이다. 실제로 기자들은 대부분 편집에 익숙하지 않거나 크게 애착을 갖지 않는데 <돌발영상>의 편집은 다르다. 또 과거의 자료와 연결시키는 것도 상당한 노력이 드는 성실함이 배어있다. 흔히 방송기자들이 갖추고 있는 덕목이기보다는 방송을 '분신'처럼 애착을 갖는 PD들이 갖는 사명감에 가깝게 보인다. 정통 뉴스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일탈' 이라고 많이 하지만 나는 'PD저널리즘'에 후한 점수를 주면서 아름다운 일탈이라고 했다. <돌발영상>에도 같은 이름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 하듯이 물어보자. '임장혁에게 <돌발영상>이란?' 임장혁 : '영양분이 잔뜩 든 밥숟가락'이다. 노종면 위원장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음으로 해서 5년간 배운게 굉장히 많다. <돌발영상>을 통해서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에 함몰된 정치 기사에서 느꼈던 한계의 해법을 찾았다. 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고 동시에 관례나 기자들이 아는 '내부 논리'가 아니라 일반 시민과 유권자가 보는 1차적인 반응이 정답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기사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돌발영상> 5년 동안 많이 트인 것 같다. 그 영양분이 많은 밥숟가락을 아직 다 먹지는 못한 것 같다. 10분의 1을 남기고 억지로 입을 떼 낸 느낌이다. <돌발영상>은 편파적인가? 'B급 저널리즘'인가? 원용진 : 정리하자면 <돌발영상>은 '무대 위' 보다는 '무대 뒤'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춘 셈이다. <돌발영상>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일침'을 맞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뉴스에서보다 더 신경을 쓰고 예의주시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정치 집단이 더 많이 <돌발영상>의 대상이 됐다는 의구심이 있었을 듯하다. 제작자로서 '일방적'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나? 임장혁 : 정치를 일반 언론이 다루는 '무대 위'와 <돌발영상>이 다루는 '무대 뒤'로 나눈다면 그 '무대'는 '누군가'가 설치한 가상의 공간일 것이다. <돌발영상>이 다루는 곳이 진짜 무대다. 편파성 논란에는 이렇게 항변하고 싶다. 우리가 한 사람을 따라 조명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조명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고 주인공들이 바뀌는 것이라고. 그 고정 기준은 '누가 국민 생활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느냐'이다. 당연히 청와대, 정부, 여당이다. 언론의 비판과 견제 기능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권력에 맞춰져야한다고 본다.
원용진 : 한나라당은 '우리가 야당일 때도 당했다'라고 할 텐데? 임장혁 : 나는 원칙에 충실했다. 지난 정부 때도 정부와 청와대를 비판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야당이지만 지금과 달리 국회를 좌지우지한 세력이었다. <돌발영상> 제작진은 여야 간에 양적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이후 자체적으로 계량화를 해보니 여야간 다룬 횟수가 비슷했다. 물론 돌아보면 '임팩트' 있게 다가온 것은 한나라당이 더 많았는데, 그것은 한나라당에 전여옥 의원이나 김용갑 전 의원 같은 이른바 '스타'들이 더 많아서였다. 그들의 발언과 행동이 화제가 많이 됐던 시기였다. 일부 <돌발영상> 제작진이 현장에 나가서 취재해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YTN 내에서 뉴스 제작을 위해 촬영해 가져온 화면을 소재로 삼는다. 취재와 촬영에는 제작진의 의도가 반영될 여지가 없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소재가 되는 화면만 두고 보면 지금은 정부 여당의 화면 비율이 70% 이상이고 노무현 정부 때는 50% 정도 였다. 지금과 지난 정부 당시 '야당'의 세력 차를 보여주는 듯하다.
원용진 : 작년에 <피디저널리즘>이라는 책을 쓰면서 정통 저널리스트의 평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PD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이 아니다'라는 식이다. 무엇인가 정상이 있고 비정상이 있다는 고집이 저널리즘 안에는 강하게 남아있다. 신문이 방송을 대할 때 '오소독스'(orthodox·정통) 시각에서는 변형된 저널리즘에 대한 인내가 적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돌발영상>도 비슷할 것 같은데 자칭 '오소독스한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는 분들로부터 껄끄러운 이야기나 폄하는 들은 적 없나. 임장혁 : <돌발영상> 제작진의 직종은 기자고 실제로 내가 하는 일은 '프로듀싱'이라기보다 '보도'하는 역할이지만 'PD저널리즘'을 폄하하는 시각에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과연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은 누가 더 컸을까. 왜 폄하하는 PD저널리즘의 영향력이 더 큰가. 그 기준이야말로 잘못됐다고 반성해야 한다. 지금의 저널리즘이 갖고 있는 금기와 기준부터 없애고 적극적인 역할론으로 가야한다고 본다. '통제' 강화된 <돌발영상>, '기계적 중립성'의 덫 원용진 : 앞으로 <돌발영상>이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돌발영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불만이 제기됐다면 불만을 가진 쪽에서 없애거나 나름의 공정성을 만들려 하거나 할텐데, 5년 넘게 돌발을 제작한 사람으로서 우려가 있을 것 같다.
시청자들도 억지 균형을 찾으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사안 별로 다룬 <돌발영상>에 호응했다. 만약 앞으로 <돌발영상>이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을 취한다면 기존 보도와 똑같아지고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용진 :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의 탈피, 임장혁 기자의 기대이기도 하고 시청자들이 <돌발영상>이 과거와 어떤 것이 달라졌느냐를 볼 때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보인다. 프레시안 : 지난해 3월 '마이너리티리포트'가 제작될 때만 해도 <돌발영상>은 보도국장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율적인 조직이었다. 그러다 이번 정직 징계에서는 <돌발영상> 내용의 편파성을 들먹였다. 독립적인 제작환경에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간섭을 받는 환경으로 바뀌게 됐는데, 앞으로 <돌발영상>의 제작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임장혁 : 지금은 거의 소재 선택 단계에서부터 데스크를 거치고 있는것으로 안다. 자율성이란 양비론이나 기계적 중립을 탈피할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제작진의 창의력이나 의도가 깊게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 같다. <돌발영상>은 편성 책임자가 아닌 제작진이 방송 결과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이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돌발영상>이 좋은 평가를 받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돌발영상>이 속해있는 팀의 부장도 '<돌발영상>의 자율성이 유지돼야 한다는것은 나도 알고 있다'며 인정하기도 했다.
작년 여름에 언론이 반발하던 것에 비춰보면 지금의 수준은 턱도 없다. 정부의 언론 장악 과정이 하나하나 진행되어가면서 개개인이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닌가' 생각하는 '위축 효과'의 결과다. 결국 언론인들이 어떻게 연대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과연 힘을 다시 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YTN 집회를 보면서 '마지막 불씨는 아직 여기에 남아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이를 YTN 내부의 문제로 함몰되면 이 불씨마저 마지막이 아닐까. 지난 여름부터 정부가 1년간 언론을 공략해왔던 것이 '완결'되는 것 아닌가 싶다. "상식에의 믿음으로 싸워왔다"…"언론의 사회적 연대가 아쉽다" 원용진 : 이른바 '정치로부터의 역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역습을 처음 당했을 때 '윤택남 지키기'와 같은 사회적 연대가 출발했던 때에 비해 몇 개의 언론사는 현재의 통제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등 언론을 둘러싼 사회적 연대가 깨어져가는 것 같다. 실제로 YTN이 지난해 받았던 연대에 비해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가. 임장혁 : 물론 그 당시 저희들을 뜨겁게 지지했던 분들이 거의 안 계시는 상황인 것은 맞다. 연대가 느슨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의 하나로 본다. 우리가 시민들과 연대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결국 '언론의 공정성'이었고 현 권력에 몸담았던 사람이 사장으로 오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후자는 달성을 한 상태고 그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도 많이 보여드렸다. 구본홍 씨가 나간 이후에는 공정보도를 위한 노력이 내부 문제로 귀결됐다. 스스로 해결해야할 상황임이라고 본다. 물론 또 지금의 국면이 넘어가서 언론의 공정성, 신뢰도가 표면에 부상하는 싸움이 닥치면 연대를 바라는 투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용진 : 사회운동 등을 볼 때 중요한 조건으로 두 개를 꼽는다. 하나는 투쟁을 해본 전력이 있는가, 이른바 '조직의 기억'이다. 또 하나는 싸우기 위해 동원할 자원이 얼마나 있느냐이다. KBS 등에 비해보면 YTN은 가진 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이 국면에서 사내 투쟁을 이어가는 힘이 무엇일까? 임장혁 : 작년 초반에는 구호를 누가 선창해야하는지도 몰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원도 없고 조직력도 경험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려움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일이 거창하게 '반정부투쟁'이나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여서 외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실 특별한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원용진 : 결국 상식에 대한 믿음이었다는 말인 것 같다. 정치적인 동학을 고민하기 보다 으레 기자로서 지켜야할 상식과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컸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상식을 믿고 투쟁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떤가. 생활인으로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든지? 임장혁 : 기자로서 그간 기사를 쓰거나 읽으면서 '공무원 노조, 교직원 노조, 몇 명 해고' 이런 것을 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다 당해보니까 금전적이거나 신분상 돌아오는 불이익이 상당하다. 해고는 말할 것도 없고 정직도 일단 월급이 나오지 않고 호봉이 누락되고 연차휴가까지 줄기 때문에 금전적 피해가 심각해진다. 다행히 저희는 동료들이 매달 20~30만 원씩 내는 희망펀드로 먹고 살고 있다. 사실 가장 힘든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언제까지 동료들의 피와 땀으로 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고민이다. 나는 '정직-복직-대기발령-복직-정직'을 거치면서 유일하게 내는 입장과 받는 입장을 모두 거쳤다. 둘을 비교하면 받는 입장이 더 힘든 것 같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이다. 가족이 힘들어하는 것, 검찰 소환이나 징계, 경찰 수사 등이 닥칠 때 정작 본인은 별 느낌이 없지만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려줄 때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동료들이 거둬준 돈으로 산다는 것과 가족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고통. 해고된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일하고 싶을까, 짐작이 간다.
원용진 : 앞으로 임장혁 기자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의 소망이나 계획이 궁금하다. 임장혁 : 강압적인 방법이었지만 <돌발영상>이 제 손에서 떠났다. 제가 다시 할 날은 그야말로 '언젠가'일 수밖에 없다. 현실을 직시해야할 것 같다. 이제 정직 기간이 끝나고 기자로 돌아가면 그간 투쟁 과정에서 느낀 것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취재를 할 것이다. 그간 처음으로 취재를 당하는 입장이 되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YTN에 얼마나 섭섭해하고 많은 불만을 느꼈을까 하는 점을 느꼈다. 2달 후엔 예전보다는 나은 모습으로 좀더 억울한 이들의 사연과 '실체'에 접근하는 마음으로 기자에 복귀할 것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마에다 요시노리는 일본 NHK를 세계적 공영방송 반열에 올려놓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칭송을 받는다. 3번이나 회장직을 연임할 정도였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일본의 고도 성장,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경영규모도 키웠고, 보도 시스템을 정비해 명실상부한 보도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만들었다. NHK 외형 만들기에 일등공신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100미터 달리기의 JJ (글의 나중을 위해 이름의 이니셜만 밝힌다). 높이 뛰기의 JH. 탁구의 JS. 씨름의 WK. 사격의 TB. 투포환의 JS. 태권도의 SD. 이들은 모두 나의 중학 친구들이면서 유력한 우승후보들이었다. 체육선생님도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컸고 우리를 응원팀 정도로만 여기는 분위기였다. 고향 동네에서 이름을 날리던 친구들이었으니 그 정도 대접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대회가 시작된 첫날 예선 탈락팀이 짐을 싸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출전 팀이 적어아예 준결승부터 시작하는 우리는 아직은 가방을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렸다. 스타 친구들의 경기에 가서 추임새를 넣고 337박수를 치는 일에 열중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스타 친구들의 돌봄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출전 선수라기보다는 스탭에 더 가까웠다고나 할까. 스타 친구들은 예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준결승부터 시작했던 우리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짐 쌀 준비를 했다 (아 맞다. 그 땐 졌다는 표현을 짐 싼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직 결승을 남겨두었던 스타 친구들에 건승을 부탁하며 진주를 떠났다. 한 경기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응원에 힘썼고, 동메달도 땄고 그들을 위무한 스탭 일을 했다는 점에서 밥값은 했다고 자위했다. 예상대로 스타 친구들은 학교 조회 시간에 연단에 올라 다시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동메달에 그친 우리는 그냥 호명되는 것에 그쳤다. 금메달 수상자가 많았던 탓에 은메달, 동메달은 그냥 호명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스타 친구들은 그야말로 동네 스타였고, 초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은 전혀 없었다. 한 경기에 동메달을 목에 달았지만 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들에 뻐기기도 했다. 운동을 계속해 특기생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친구들도 있고, 중간에 딴 길을 찾은 친구들도 있다. 대부분의 스타 친구들은 운동 특기로 진학을 했고 고등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간혹 소식을 전해 들었다. 중학 이후 고향을 떠난 나는 그 때 중학 2학년 진주에서의 고함소리, 땀내 나는 숙소, 짐 싸던 일, 호랑이 체육선생님 눈피해 구경나가던 일, 중간 중간 먹었던 사이다와 삶은 달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가을을 떠 올리면 가장 먼저 낙엽과 오버랩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들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스타 운동 선수였다. 나이 들어 고향을 찾는 일들이 많아졌다. 코흘리개 때 친구들의 경조사 탓이다. 고향 사는 친구들은 귀찮아들 하지만 자리에 앉으면 그 때 이야기 전하고, 친구들 소재도 묻고 안부를 묻는다. 당연히 스타 친구가 사는 모습이 궁금해 귀찮도록 물어본다. 소식이 닿지 않은 친구들도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단다. 대부분은 고향 근처에서 살고 있단 소식에 함께 잘 얼굴을 안 드러낸다는 말이 얹힌다.
나더러 중간에 운동 그만두길 잘했다는 친구들의 말이 귓등을 때린다. 작은 소도시에서 날고 뛰어봐야 어릴 때만 잠깐 반짝할 뿐 아무런 소득이 없는 일 아니었냐고 주변에서 거든다. 내 마음 속 그 스타 친구들의 근황을 근거로 그런 말을 던지는 것 같다. 빛나는 금메달을 멘 연단 위 스타 친구들이 이젠 인생사는 법에서 타산지석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운동 아니면 공부로 인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이분법이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는 탓이리라. 그 때 운동을 선택하겠다는 결정은 어린 마음 혼자 정한 일은 아니었다. 그 결정은 주위의 격려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격려는 많았지만 그 결정이 잘 된 결정이랄 만큼 도와주는 조건의 배려는 없었다. 운동을 계속해서도 그 소질을 살릴 수 있고, 젊었을 때의 운동이 인생을 더 윤택하게 해주고, 고향도 굳건히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조건을 만드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고향의 스타 친구들의 삶을 실패한 삶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때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그 열정에 해당할 만큼의 돌려받음은 없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마음 속 운동 스타 친구들이 어린 아이들과 100미터를 달리고, 탁구공을 넘겨받고, 포환을 매만지며, 샅바를 댕기며, 품새를 챙기며, 바를 풀쩍 넘는 그런 모습을 보기를 바랐지만 그런 장면은 한 컷도 연출되지 않고 있다. 운동장을 뛸 아이들이 없다는 사실만큼이나 대접을 받지 못한 내 마음 속 스타 친구들의 모습이 그래서 안타깝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오래전 그만 둔 운동을 사회 운동으로 종목을 바꾸어 - 힘에 부치기는 하지만 - 나를 뛰게 하는 힘일 지도 모르겠다. (원용진 :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 전국 투어를 앞두고 서울에서 열리는 공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번 콘서트는 블랙홀 20주년을 축하하는 후배 밴드들이 함께 합니다 11월 27일에는 갤럭시 익스프레스, 크래쉬, 노브레인, 블랙홀이 공연합니다 (7시 30분) 11월 28일에는 디아블로, 스트라이커스, 크라잉 넛, 블랙홀이 공연합니다 (5시) 장소는 소월 아트홀 (2, 5호선 왕십리역 9번 출구 30미터 거리) 전석 50,000원. 이 공연은 문화연대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1020 콘서트인데요 문화연대 10주년, 블랙홀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인 셈이지요. 멤버 변화없이 오직 한 길을 걸어온 블랙홀을 인터뷰, 보도하고 싶은 분들은 여기에 글을 남겨 주시면 곧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블랙홀 멤버들도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홍보해서 더 많은 대중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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