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의 눈물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
“돈 받아 MB 캠프에서 썼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멘토로 불리던 최시중이 개발사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며 시인한 내용이다. 그가 돈 받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긴 한 운전기사는 최씨를 협박해 돈을 뜯었다고 한다. 사진 탓에 뜯긴 돈이 2억이라 하니 그가 숨기고자 한 금품 규모는 도대체 얼마만 했을까. 금품을 받아 챙기며 씀씀이가 커졌을 터이니 이후에도 금품 수수는 관성으로 인해 지속되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최시중은 오랫동안 세상의 주목을 받아온 실세 중의 실세였다. 대통령, 형 이상득과 동향이기도 하고, 멘토였으며 측근들의 좌장이란 점에서 그는 언제나 뉴스 메이커였다. 최시중은 자신이 그런 사람임을 곧잘 내세웠고, 역할 이상의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공영방송사의 사장을 압박하거나 강압적으로 몰아내는 일도 그가 떠맡았다. 신문사의 방송 사업 겸영을 허가하는 미디어법 제정에서도 앞 줄에 섰었다. 여당 국회의원에 돈 봉투를 돌리는 대담함에 이르면 그를 실세라 칭하는 일조차 면구스러울 정도다.
그런 그를 비판하거나 월권을 지적하면 최시중은 곧잘 눈물로 대답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한 몸을 바쳤다며 없던 사실을 지어내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언론 탄압 사실을 부정하며 비판과 지적을 되받아치는 일에도 능숙했다. 과다한 업무추진비 사용을 지적하는 말도 국가를 위한 일이니 큰 문제가 없다며 잘라버렸다. 그의 양아들의 수뢰 및 도주 사건에도 미안한 낯 빛 조차 하지 않았다. 위법, 탈법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면서도 눈물로, 유연한 받아치기로 면피해갔다.
패악에 가까운 그의 행태가 남긴 유산은 사회가 고스란히 껴안았다. 소통 부재의 사회가 되었고 비판적 목소리가 지하로 숨어든 지는 오래다. 사회는 곧 입막음, 검열, 사찰 등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로 빨려들어 갔다. 불신과 불통은 일상이 되었고, 권력의 상층부는 여론을 접할 기회를 잃고 제 멋대로 횡보를 지속한다. 자신에게 과도한 혐의 부여라 또 눈물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에 그를 비유하던 일이 빈번했음을 떠올리면 결코 과한 평가는 아니다.
지금 두 세달 씩 지속되는 KBS, MBC, YTN 파업도 최시중과 연관짓지 않고선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이다. 최시중이 벌인 일에 대한 항의로 읽어도 무방하다. 파업을 두고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않는 방송사의 이사회, 방송통신위원회의 무능함도 최시중이 짜낸 방송정략과 무관하지 않다. 양 공영방송사 경영진이 남발하고 있는 징계, 판공비의 과잉 사용, 조직문화의 퇴행적 변형 등은 최시중의 비판적 목소리 자르기를 본뜬 쌍둥이 행태다.
그는 방송통신위원장 자리를 물러나면서도 눈물을 훔쳤다. 나라를 구한다는 일념으로 일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형편없다며 흘린 억울함의 눈물이었까? 아직 할 일이 더 남았는데 다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이었을까? 소환과 수사 등의 과정을 통해 다시 그의 눈물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좀체 그러기가 힘들겠지만 그 땐 좀 다른 눈물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한 눈물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온 사회를 위한 회한의 눈물이기를 기대한다. 해고 등 징계로 고통을 받는 방송인들을 위한 눈물을 보고 싶다. 그래서 노인의 눈물로 온 사회가 방송인들의 저항과 고통을 인지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되는 그런 날을 그려본다. (이 글은 지방 5개 신문 공동 시론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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