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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말 못함 증(症)
막 학교에서 도착해 자전거를 주차시키는데 한 일본 할아버지가 쫓아온다. 웃는 얼굴이었다. 뭐라고 빠르게 말을 쏟아대는데 도대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천천히 말해 달라고 주문하고 몇 마디는 다시 물어 보았다. 전혀 대화가 되질 않는다. 그러더니 이젠 얼굴색을 바꾼 할아버지는 내 자전거에 손을 대며 가져가라는 시늉이다. 나중에 복기를 해보니 이런 말이었다. “이곳 자전거 주차대에 주차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왜 이곳에 주차하느냐. 너는 이 아파트에 살지도 않으면서 이곳에 주차하는 것을 보아 왔는데 다른 곳으로 옮겨라. 아니면 월 주차료를 내든지...” 아마 옆의 아파트 관리인이었던 모양이다. 자전거 주차료에 대해선 전혀 들은 바, 아는 바가 없던 나로서는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갈수록 험악해짐을 느끼면서 자전거를 치웠다. 낯선 곳에서의 외국인이 되는 기분을 다시 느꼈다. 아예 일본어가 되지 않는 나로서는 참으로 답답함을 느꼈고, 점차 얼굴색을 바꿔가는 그 노인네에 화가 나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의 심정,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답답함 그런 것을 다시 한번 며칠 전 경험을 하였다. 뭐 대단한 경험이냐고. 여행 중인 외국인은 결코 외국인이 아니다. 여행객은 그 곳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그 곳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곳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돈이 있기에 돈을 쓰면서 여행을 하는 사람과 돈이 없기에 돈을 벌러 가는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여행객과 외국인의 차이다. 유학도 외국인이 되는 경험의 일부다. 취업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외국인이 되면 누구든 말 못함 증에 시달린다. 우선 외국말이 낯설거나 서툴러서 말 못함 증에 시달리지만 그 보다는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의 말에 대한 나 스스로의 조바심 때문에 말 못함 증에 접어들게 된다. 외국말이 유창해질수록 외국말에 담겨져 있는 외국인에 대한 경계 같은 것을 자세히 알게 되고, 그럴수록 말 조심하게 되고, 행동에도 조바심나게 되고 결국 말하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복합적 말 못함 증에 접어들게 된다. 입 막는 사회 라캉으로 말을 시작한 이유는 언어의 세계란 단순히 말을 유창하게 하느냐 아니냐가 아닌 권력의 집적판임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일본 할아버지는 내가 백인 외국인이었다면 당연히 말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백인에 대한 숭배심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말을 잘 걸지도 않는다. 소위 자기 오리엔탈리즘(Self-Orientalism) 탓이다. 하지만 재일 한국인거나 조선인인 경우 그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말하는 자세, 톤, 분량 모든 것이 달라진다. 권력 탓이다. 영어를 잘 한다고 영어권에서 막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말자. 영어의 유창함과 관계없이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여건이 없으면 그 영어는 늘 혼잣말이거나 침묵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외국어를 배울 때 용기를 내야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한국인들이 잘 안 되는 영어라고 하더라도 미국에서, 영국에서는 다소곳이 말하지만 태국, 필리핀 등에 가서는 맘껏 떠드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달러가 있기 때문에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주머니 속의 달러도 큰 용기를 주지 못한다. 양코쟁이 앞에 서면 작아지는 무의식적 훈련을 받아온 탓이다.
말 못함 증의 답답함을 이겨내지 못한 택시 노동자는 자신의 몸에 불을 살랐다. 며칠을 고통 속에서 보내다 세상을 하직했다. 그가 하지 못했던 말은 그가 남긴 글자들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말 못함 증을 떨치려 몸부림 친 흔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날마다 현란한 말들을 쏟아내는 잘난 대통령, 재벌, 관료, 언론, 학자들 앞에서 말 막혀 한다. 그들은 늘 얘기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인권 변호사였던 노무현은 말 못함 증세에 접어들려 하는 사람들을 말하게 해주겠다고, 토론 공화국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꼬드겼다. 토론하겠다고, 국민들 모두가 말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모두모두 참여하자고. 그를 선택한 많은 사람들이 갖는 희망은 오직 하나였던 것 같다. “아 이젠 말해볼 수 있으려나” “이젠 내 말에도 사람들이 귀 기울이려나” 그것 말고 무엇이 있었을까. 버지니아의 비극 권력 있는 자만 말하고, 그러지 않는 자는 계속 말 못함 증 안에 있어야 함이 너무도 자명해진 세상에 접어들었다. 어민 700명쯤의 말이야 듣지 않아도 된다고 버럭 화를 냈다는 대통령이 있는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다. 주머니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이제 모두 말 못함 증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찾은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무리 유창하게 한국말을 배우더라도 영원히 외국인이고, 말 못함 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지독한 인종차별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 한미 FTA에 관한 말은 관료들에게 맡겨두고 모두가 침묵해야만 협상이 잘 이뤄지고, 이길 수 있다고 대통령과 관료들은 아예 나서서 말 못하게 하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말 못함 증 있다 해서 말 하지 않고 침묵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님을 허세욱 씨는 불꽃이라는 선명함으로 경고하고자 했다. 억압된 자의 불꽃이라고 할까. 하지만 아직도 말 많은 자들은 자신들이 말솜씨에 도취되어 있을 뿐 그 불꽃의 의미를 읽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자기 땅 안에서 외국인이 되는 느낌을 갖는 사람의 맘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길거리에 나서서 답답한 가슴을 쳐도, 머리를 깎고 곡기를 끊고 몸을 곳 추 세워도, 온 몸을 불살라도 그들은 읽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란 탓일까. ‘말해봐, 말해봐, 좋은 대안이 있으면 말해봐’라며 조롱한다. 그러지 말라. 말 들어주지 않고, 말 하지 말라고 꽁꽁 묶어놓고, 말 못함 증을 살펴보아 주지 않는 사회는 비극적인 모습을 만날 수밖에 없음을 저 멀리 버지니아의 비극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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