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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성의 사사화(mobile privatization)'. 이보다 텔레비전과 대중정치를 압축적으로 설명한 개념이 있을까. 영국의 인문학자 레이몬드 윌리엄즈가 대중이 펼치는 새로운 일상을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개념이다.1) 대중적 삶의 조건이 급변한다며 제안하였다. 기술발달로 인해 전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그로 인해 대중 일상(시공간 감각 변화, 생활 리듬의 변화, 공사 인식 변화)이 바뀌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한 고안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텔레비전 등장 탓에 대중의 세상보는 시각이 바뀌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바뀌었음을 강조하고자 했다. 세상만사를 어차피 다 경험할 수 없는 대중은 텔레비전을 소중한 경험, 정보, 지식 제공자로 인식하고 ‘세상을 향해 열린 창‘으로 받아들인다. 방송사가 가공한 경험, 정보, 지식은 공적인 지위 덕분에 가정(home) 진입에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진입이 이뤄진 후는 사사화된다. 공적 공간에서 사적 공간으로 옮겨지면서 그 성격이 변한다. 이동과 함께 벌어지는 성격의 변형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적 공간으로 이동된 경험, 정보, 지식은 다시 가정을 빠져 나온다. 가정 바깥의 토론, 혹은 여론으로 이동하면서 다시 공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전에 등장했던 책, 신문, 잡지 등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텔레비전이 공사의 공간을 빠른 속도로 횡단하며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 개념을 제안하였다. 이동성의 사사화는 텔레비전이 대중매체의 총아로 우뚝 서 대중정치의 중심 역할을 하는 시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바뀌어 텔레비전이 전적으로 대중 정치 공간을 독점하지 않는다. 윌리엄즈가 이 개념을 제안한 때와 비교해보면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이 개념을 현재 상황에 적용할라치면 수정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달라진 사정들을 살펴보자. 가정으로 이동한 텔레비전적 경험, 정보, 지식은 과거만큼 대중 인식을 주도하지 못한다. 텔레비전은 타 매체와 경쟁 하거나 한데 어우러져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인터넷 보급 확산으로 텔레비전 위력은 예전같지 않다. 텔레비전적 경험, 정보, 지식은 상호 텍스트성(intertextuality)으로 설명해야 할 정도로 뉴 미디어2)들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사화된 텔레비전적 경험, 정보, 지식이 가정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에 이르면 인터넷 위력은 텔레비전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텔레비전적 경험, 정보,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재 가공(혹은 재 매개 re-mediation)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동성의 사사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현재의 맥락 즉 새로운 매체 정경(media-scape)을 감안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3) 사회 내 경험, 정보, 지식이 텔레비전, 가정, 공적 공간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고, 텔레비전이 인터넷과 조우해 새로운 이동 흐름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주기에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이하 TV토론)만큼 적합한 예는 없다. TV토론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긴 하지만 그 텍스트 구성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TV토론 텍스트는 적어도 3가지 서로 다른 공간을 지니고 있다. 그 첫 번째는 토론이 벌어지는 방송사 스튜디오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토론자들은 공적 토픽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정리하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 이를 날(raw) 토론 공간, 혹은 제 1공간이라 부를 수 있겠다. 토론자들이 열심히 날 토론 공간을 만들면 텔레비전은 그를 자신의 방식으로 가공(재현 re-presentation)해낸다. 자신의 제작 방식을 활용해 날(raw) 것을 익혀(cooked) 낸다. 이를 가공된 공간, 텔레비전적 공간 혹은 제 2공간이라 부를 수 있다. 재현된 제 1공간 즉 제 2공간은 텔레비전을 통해 가정으로 이동한다. 사사화가 발생하는 제 3공간은 수용과 반응이 생기는 공간이며, 다시 가정 바깥으로 이동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면서 다시 인터넷 등과 연접하는 경계 공간, 재매개 공간인 셈이다. 제 1공간에서는 주로 지식인이 지식 수행(performance)을 벌인다. 지식인들은 이 공간을 통해 이미 생산된 정보, 지식을 대중 시청자를 대상으로 요약하고 전달한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내용이더욱 설득력있는 것이라며 동의를 구하려 노력하는 공간이다. 제 2공간은 텔레비전이 꾸리는 텔레비전적 공간이다. 지식인들의 토론 수행을 이미 텔레비전에 익숙해있는 대중에게 텔레비전 코드로 변환(encoding)해 의미 형성과 인기 끌기를 구사한다. 지식인들이 펼치는 수행에다 대중의 즉시적 반응(시민패널참가, 전화를 통한 시청자 참여 등)을 첨부해 텔레비전적 재미를 극대화한다. 제 3공간은 수용자들이 텔레비전적 재미를 독해하고(decoding) 동시에 사회적 소통을 위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변환하는(trans-coding)하는 양면적 공간이다. 텔레비전을 음유매체(bardic medium)로 인식함에 많은 매체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영상과 문자 텍스트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은 아무래도 구어 매체에 가깝다고 본 탓이다. 제 1, 2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내용들은 대중을 현전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만들어진다. 대체로 TV토론이 생방송임을 감안해보면 대중 현전성 가정은 명료해진다.4) 말을 듣는 상대방, 말에 끼어드는 상대방을 전제하고 발언하고 제작한다. 제 3공간은 대중이 말하는 공간이다. 시청 전후에 토론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일이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TV토론 전 과정은 당장 말을 하고 말을 받는 상황이라 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토론이 텔레비전에 잘 어울리고, 나름대로 그 따분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특정 국면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5) 구어적 성격인 탓도 크다. 대중들이 토론 프로그램의 끝자락을 잡고 다시 갑론을박하며 재미를 얻는 것도 구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바가 크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의 각 결절점(제 1, 2, 3 공간)에서 벌어지는 구어성, 구어적 수사법은 현 시기 대중의 감정구조(the structure of feeling)를 드러내는 지표일 수 있으므로, 이동성의 사사화 점검은 현 정세를 분석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 제 2공간에서 제 3공간으로 이어지면서 비장함과 엄숙함을 대신한 경쟁 게임 자리에는 놀이가 들어선다. 이른바 댓글놀이, 말놀이 등이다. 1, 2 공간에서의 경쟁, 게임 성과물을 대중이 즐기고, 그를 사사화시키면서 다시 공론화시키는 놀이를 벌인다. TV토론이 인터넷과 이어지면서 놀이는 더욱 강화된다. 놀이의 영역으로 들어서면서 대의성의 흔적은 흐미해진다. 그나마 토론으로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 쪽도 대의성 평가가 아닌 개인적 차별성 평가와 관련된 것일 뿐이다. 제 3공간에서는 때로 제 1, 2공간에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개념이나 정보를 제공하며 전혀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제 1, 2, 3 공간으로 이어지는 연쇄는 전달, 계몽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변형과 게임, 놀이가 이어지는 전혀 이질적인 공간의 연쇄라고 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이질적 공간이 연쇄되는 TV토론, 그리고 그 안의 대중의 수사를 통해 짚을 수 있는 대중의 감정구조는 무엇일까. 이동성의 사사화를 통해서 대중의 근저에 무엇이 깔렸는지 짐작할 수 있을까. 우선 대의성을 내건 자들의 엄숙함에 대한 대중의 냉소, 관심없음을 들 수 있다. 이미 논의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 효용에 대한 의구심은 TV토론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등장 토론자들이 대의성에 집착하는 정도는 점점 더 커 가는 반면 그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은 급속도로 빨라져 그 괴리의 폭은 무한정 넓어지고 있었다. 토론에서 대의성을 덜 내세울 수록 환영을 받는 것도 그런 배경 탓이다. 대중이 현 정치체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며, 덜 참여적이라는 진단에는 대의, 대의성, 대의하는 집단 자체에 대한 점검이 선행되지 않으면 대중만 단죄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대중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재매개 영역 즉 제 3의 영역이 위축되고 이름 그대로 사사화되기만 한다면 TV토론은 말 잘하기 싸움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TV토론은 “우린 토론도 하고 있다”를 보여주는 시물라크라로만 존재할 것이다. 그 같은 상황도 겪었고, 제 3공간의 활성화를 통해 전에 없는 재미도 느껴본 경험이 있는 한국 대중은 제 1, 2, 3공간을 균질화하려는 노력 앞에서, 소통의 파시즘적 상황을 구축하려는 의지 앞에서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까. 냉소와 사사화로만 빠져들며 지금껏 즐겨오던 공간들의 이질적 연쇄를 포기할까. 아니면 아직도 남아있는 재미의 기억을 되살려 공간 동질화 시도에 반발하며 이질적 연쇄를 보전할까. 실망스럽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 TV토론이지만, 방송사의 면피용 편성이라는 핀잔도 남아 있지만 가끔씩은 우리로 하여금 밤을 새우게 해 그 기억을 몸에 남겨두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어 아직은 지키고 싶고, 그 안의 수사들을 기억해두고, 퍼뜨리고 싶은 그런 사회적 제도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서 그안의 이질적 연쇄들에 아직은 편한 눈길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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