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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인간 주체 애초 인간은 자연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노예적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노예로 사는 일이 싫었던 탓일까. 인간은 문명을 이루면서 노예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 예전의 노예 신세를 벗어난 인간은 노예가 아닌 주체로 격상된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주체로의 격상. 공짜로 얻은 것은 아니다. 지위 격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비용을 지불하게 하였다. 이른바 “세계와의 일치감” 상실이다. 아도르노는 인간과 자연이 일치를 이루던 시대를 미메시스(mimesis) 시대라 불렀다. 세계와의 일치감 즉 미메시스를 잃은 시대를 신화의 시대, 야만의 시대라 칭했다. 그리고 인간은 이제 신화의 시대, 야만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말했다. 세계와 자아간 일치감을 잃고 자신의 모태를 놓쳐 자아 혼동으로 접어드는 문제에 봉착함을 경고한 셈이다. ‘노예의 시대,’ ‘문명의 시대’를 지나 ‘풍요의 시대’를 맞고 있다지만 그 시대는 곧 ‘인간 상실의 시대’와 겹치는 아이러니적 시대다. 루카치는 유명한 묘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존재하던 때를 노래한다. 아니 ‘인간 상실의 시대’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치를 노래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루카치, 1920) 문명의 시대, 풍요의 시대를 왜 야만의 시대, 인간 상실의 시대라고 일컫는 것일까.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다. 인간의 조건이 위험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말살될지도 모르는 환경 위기, 생태 위기, 과학 우위의 시대, 그리고 위험의 시대로 돌입했기 때문이다.
환경, 자연, 생태적 삶의 중요성 강조는 근대 이후 인간 주체에 대해 심각한 재고를 요청한다. 서구 근대에서의 인간의 주체화는 - 의도와는 달리 - 인간의 대상화 혹은 인간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반성이 이뤄졌다. 지금껏 이뤄져온 인간 주체화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인간 주체 형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소아에서 대아로의 전환을 꾀하는 시도, 그를 성공시킬 기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세상을 크고 길게 보는 새로운 관점, 즉 빅 히어(big here)와 롱 나우(long now)가 합쳐진 롱 히어(long here)를 요청하고 있다. 생태계, 자연, 환경, 과학, 위험의 문제에 인간은 연결 고리로 엮여져 있다. 당연히 이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연결 고리인 인간 주체의 변환, 변환을 위한 기제의 마련 등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주체 형성과 관련된 여러 사회 제도들과 자연, 환경, 위험 문제를 동시에 거론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현대 사회의 주체 형성에 있어 다양한 제도들이 경쟁을 벌인다. 대중매체도 주요 경쟁자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매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중매체는 타 사회 제도들과의 관계에서 때로는 1차적 중요성을 갖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 제도들의 보조 역할을 하기도 한다. 1차적 중요성 제도로 역할 할 때 대중매체는 정의자(priming) 지위를 갖기도 하고, 틀 짜는(framing) 지위를 누리기도 한다. 보조 역할을 할 때 대중매체는 증폭기(amplifiers)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확인을 해주는 보증자(guarrantor) 역할을 행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대중매체는 타 제도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 역할을 해내되, 그것이 갖는 - 거의 완벽한 - 유통망 (특히 텔레비전의 경우) 탓에 큰 힘을 발휘한다. 사회운동이 점차 기호로써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대중매체의 사회적 중요성 증대 탓이다 (Melucci, 1989). 대중매체를 통한 사회 운동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매체적 한계가 있으며, 매체의 표현적 한계 또한 있기에 매체를 통했다고 해서 캠페인이 성공했다고 보기란 어렵다. 대중매체를 통한 탓에 운동성이 줄어버린 예도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대중매체를 운동의 한 과정 속에서 어떤 역할로 인식하고, 그에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전략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대중매체를 통해 구성된 현실이 사회에 파급되어 잘 인식되고, 나아가 생태인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를 흡수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의식(rituals)인 한, 대중매체의 전달 내용은 수용자에 의해 공유되어 있어야 효과적일 수 밖에 없다. 전혀 새로운 것을 전달하는 일은 세상이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닌 한 어렵다. 그러므로 대중매체가 관련 이슈와 관련해서 - 운동 단체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한다 하더라도 - 사회적 효용을 갖기 위해서는 그를 흡수할 수 있는 정지 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대중매체의 상대적 독자성, 그것이 지닐 수 있는 능동성은 과소 평가할 이유는 없다. 대중매체가 관련 이슈와 관련해서 외부 압력기관에 의존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대중매체는 그를 다루기에 적합치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문제에 관한 한 전향적인 이념을 띨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환경/생태/위험 친화적 분위기를 구성해낼 수 있다. 직접 관련 이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덜 부담이 가는 의제들을 친화적으로 말함으로써 구성된 현실을 더 빨리 인식하고 나아가 생태인 주체로 전환될 수 있게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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