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과잉 장밋빛 미래
IPTV에도 예외없이 적용
정부, 방송에 개입보단
매체균형발전 도모해야
뉴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장밋빛 덧칠이 심하다. 이번 덧칠의 캔버스는 IPTV다. 위성방송이나 DMB 방송 때보다 더 진한 덧칠이 휘갈겨지고 있다. 뉴미디어 산업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보노라면 신중했으면 좋으련만. 신산업 확장, 고용 창출의 슬로건을 내건 전망은 장밋빛 덧칠 이상이기도 해 그 과잉이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신중하라는 주문에 자신 있는 답이 날아든다. 위성방송이나 DMB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미 초고속정보망이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접속된 가정이 많아 반쯤 가정으로 진입해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지상파 방송의 재전송도 해결되었고, 영향력 있는 콘텐츠 제공자들도 확보되었으니 반쯤은 성공이라 소리 높인다. IPTV가 전해줄 양방향성, 그리고 풍부한 정보에 이르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정보의 엘도라도가 될 거라며 자신에 차 있는 듯하다.
수용자들은 새로운 매체로의 전환에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IPTV에 드는 비용을 철저히 가늠해 결정한다는 말이다. 새롭게 메뉴가 추가된다는 느낌만으로 수용자들은 전환비용을 지불할 것 같지는 않다. 기존 방송에 비해 IPTV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한 IPTV에 쉽게 다가서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방송과 일상은 맞물려 있어 큰 만족감을 준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는 한 지금의 방송을 대하는 방식을 쉽게 포기하지 않음은 뻔한 일이다.
전과는 다른 방송이라는 확신은 좋은 화질이나 편리한 기기 혹은 풍부한 메뉴로만 성사시킬 수는 없다. IPTV가 가져올 물리적 변화를 넘어선 초절정 기대가 없다면 관심을 끌 수가 없다. 뻔하다고 여기던 것을 일소에 부치고 나날이 새롭고 기발하다는 느낌을 전해줄 내용이 없으면 쉬이 IPTV로 이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케팅, 홍보, 압축기술, 소위 말하는 킬러 콘텐츠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방송을 대했을 때 새로운 느낌, 그것이 없는 한 수용자들이 새 매체로의 이전을 망설일 것은 명약관화하다.
불행히도 IPTV 사업의 핵심사업자인 플랫폼 사업자들은 그 부분에 대해 정통하지 못하다. 텔레비전 안의 문화가 전과 확 달라져야 할 이유나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본 기억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유치하는 일은 많이 연습해왔지만 텔레비전 안의 전체 색깔을 어떻게 과거와 다르게 할 것인가라는 과제 앞에선 난감한 표정을 지을 게 뻔하다.
IPTV의 딜레마는 바로 거기에 있다.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어렴풋이 보이는데 주요 사업자들이 해결 수단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 딜레마의 핵심이다. 그럼 딜레마를 풀 열쇠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해결 열쇠를 쥔 잠정적 해결사는 정부다. 정부의 지원이 많아야 한다거나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라는 말이 아니다. 만약 IPTV가 국가적 프로젝트이고 그를 통해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 그리고 방송기술의 해외진출을 노린다면 정부는 방송에 대한 태도를 심각하게 고민해나가야 한다.
한류를 예로 들어보자. 한류의 성공은 정부 지원의 결과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한류의 관건이었다. 한류에 조금이라도 관심 가졌던 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 사안이 바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였다. 한류는 사회의 경쟁력이 곧 방송, 문화의 경쟁력이었음을 보여준 사건인 셈이다. 방송과 문화의 경쟁력은 산업의 열성, 돈의 크기에 의해 달성되진 않는다. 창의성, 실험성을 챙겨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그 경쟁력의 관건이다.
불행히도 현 정권은 IPTV가 국가 프로젝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방송, 문화 영역에 개입하기를 욕망하고 있다. 스스로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규정한 것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할까. 사회의 민주화를 도모해야 방송, 문화의 다양함이 살고, 그럼으로써 매체의 균형발전이 가능해지고, 신규 매체로의 자연스러운 이동도 가능해진다. 정부가 방송 개입을 욕망하면서도 IPTV의 성공을 위해 뛰는 모습은 마치 백미러를 참고 삼아 미래로 뒷걸음치는 것 같아 딱하기만 하다. (헤랄드경제 오피니언 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