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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작진들이 여기 저기서 고충이 많다는 말에도 내부에선 귀를 닫는 것 같다. 아예 안들은 척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선 제작진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담아 전할 수가 없으니 더 속이 탈 지도 모른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 KBS가 쫓겨 나가는 현장을 목격했다. 직접 목격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담은 것이니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도 무방한다. 제도권 언론들처럼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니니 즐감하기 바란다. 시민들의 항의가 격해지자 중계차는 중계를 접을 심산으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기술자들에게도 야유는 쏟아졌다. "대학 나왔을 것 아니냐" "월급도 많은 데 거짓 방송을 해서 되겠나"라는 항의가 이어진다. 항의에 이골이 났는지 별 대꾸는 없었다. 간간히 빈 페트병이 날아 들었다. 겨냥하지 않았던 탓인지 사람들로부터는 멀리 비켜 날아갔다. 위 쪽 사진 좌측 부분에 언론을 겨냥한 피켓이 보인다. 이 피켓은 오래 동안 중계차 운전석 앞에 놓여 잇었다. 제대로 장례식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항의성 문구를 담고 있었다. 운전석 좌우에는 이미 담배그림을 그려놓고 해로운 것은 미리 끊자는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다. 이미 KBS 차량은 시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듯 덕지덕지 항의성 문구를 담고 있었고, KBS직원들은 대꾸없이 짐 꾸리기에 바빴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오히려 걱정이 될 정도로 안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차창에 붙은 문구를 읽었던 탓일까. 점차 항의가 격렬해지기 시작한다. 그날은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잘 못했다 고 생각되는 쪽이 있으면 붙잡고 항의하고, 퍼붓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이미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아 왔을 지도 모른다. 꾹꾹 누르며 살아왔기에 걸려 든 것이 KBS 였다면 더 강하게, 모질게 야단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그 기자와 중계차 담당 기술자들은 운이 없었다. 저 멀리 여의도에서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있을 사람들을 대신해 온 오욕을 다 맞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 오욕에 억울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차창에 붙은 문구의 처절함을 대한다면 억울하다는 감정 쯤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것은 아닐까. 중계차 뒤 켠에서 어지럽게 고함들이 들렸다. 빠르게 뒤로 돌아가 보았다. 중계차에서 내려온 기자를 에워싸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굳은 표정의 기자가 난감을 표정을 짓는다. 혹 불상사라도 있을까봐 주변을 말렸다. 현장 기자에게 덜 책임이 있으니 참자며 권유할 뿐이었다. 말리던 나도 욕을 먹었으니 내가 달려가기 전 기자는 얼마나 많은 욕을 먹었을까. 과연 기자 생활을 회복할 수 있을까. 참으로 많이 아팠을 것이다. 너무 아파서 오랫동안 카메라 앞에 서기 힘들었거나 마이크 앞에서 목이 멨을 지도 모른다. 그런 후배를 내몰기만 하는 저 깊은 곳의 손들에 분노가 치민다. 경위를 앞세워서 임원실에 들어서야 했던 저들에 욕지기가 날 정도였다. ![]() 더 이상 그 자리를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황급히 중계차와 기자를 실은 차가 현장을 떠났다. 현장을 떠나는 기자의 뒷 모습. 과연 그들은 차 안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의 현장이라면 감당할 수 있었겠으나 시청자들의 항의에는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그런 무력감에 깊은 한숨을 쉬지나 않았을까. "참, 너희들이 정말 고생이 많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없지는 않다.격렬한 항의를 웃음으로 제어해주는 이들도 있음에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KBS가 더 이상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그런 시간을 가져본다면 현장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그런 수모만큼은 면할 수도 있지 않을까. ㅏKBS 차량이 떠나자 환호성이 짧게 일었다. 그 소리를 듣는 차 안의 풍경은 더욱 참담했으리라. 뒷 모습을 보이며 떠나는 KBS 차량 앞엔 빨간색 신호가 막는다. 이를 두고 진퇴양난이라고 한다면 그들에겐 너무 가혹한 말일까. KBS차량이 있던 곳에서 50여미터 떨어져 있던 MBC차량 주변에서는 추모곡을 부르는 풍경이 펼쳐진다. MBC 중계차 위의 기자는 넉넉한 여유를 잡고 카메라 앞에서 중계에 여념이 없다. 추모곡을 배경으로, 인파를 배경으로 현장을 전하는 그의 모습에선 자랑스럼조차 묻어 있는 듯 하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를 갈라놓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대중들은 곁에 있을 측과 물러나야 할 측을 구분하는 지혜를 어떻게 터특했을까. 혹 구국을 위한다는 역전의 용사들이 모인 자리에선 이와는 반대되는 갈림이 생길까. 그럴때 KBS는 기쁘고, MBC는 슬플까. 아직은 많은 질문에 답을 달지 못한다. 다만 그런 질문이 안타깝고, 그런 답을 위해 궁리를 해야 함에 화만 날 뿐이다. 방송을 이 꼴로 만들 이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버럭 소리만 지를 뿐이다. KBS의 비참한 꼴을 만나 침울해 하며 길을 지나다 미디어 비평기자이자 파워 블로거인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를 만났다. 방금 있었던 일을 전하자 자신도 카메라에 담았고, 봉화 마을에서도 비슷한 꼴을 보았다고 말한다. 파워 블로거인 그가 파워풀해질 수록 미디어 사정은 좋지 않다는 말이 되니 도대체 그의 인기는 긍정적인 것인가, 부정적인가. 이런 저런 말을 주고 받았지만 KBS가 당한 그 처첨함에 둘의 말은 그냥 조심스럽기만 했다. 우울한 탓이다. 공영방송의 미래가 점점 더 어두워가고 있는 공통된 판단 탓이었다. 멋적음을 떨치려 "고재열 기자 포즈 한번 취해봐. 현장을 지키는 기자를 기념하는 사진 한장 박을께" 크게 소리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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