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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방송 허가 요청에 대한 GHQ의 입장은 단호했다. 민영방송이 일본 민주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며 거절했다. 민영방송 계획이 우익 인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탓이다. 실제로 민영방송을 추진하던 후지야마와 후나다 양씨는 1946년 전쟁협력 혐의로 공직으로부터 물러난다. GHQ의 자문기관이던 '연합국 위원회'에서도 민영방송설립 불가를 천명했다. 민영방송이 오히려 일본의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할 거라는 발표까지 내놓았다. 강한 반대에도 마츠마에 체신원 총재는 뜻을 접지 않았다. 후지야마와 후나다 등 우익인사가 빠진 자리를 광고회사인 덴츠의 요시다 상무가 메웠다. 요시다는 마츠마에를 대신해 전국의 신문경영자들을 만나 신문방송겸영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물론이고, 인재확보까지 돕겠다며 신문경영자들을 설득했다. 집요한 노력 탓이었던지 드디어 GHQ는 민영방송설립안을 받아들이고, 1951년 16개사에 예비면허를 허가한다. 일본의 신문과 방송겸영 역사가 시작하는 순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민영방송, 신문방송겸영 체제는 탄생했다. 우익 정치권력, 대자본, 신문경영세력이 합심한 결과다. 이후 바로 이들이 일본의 여론을 주도해왔다. 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른 역사의식을 가진 채 역사를 망각하기도 하는 일본을 이끌어 왔다. 남의 땅을 자기 것이라 우기고, 군 위안부는 자작극이라 망언하며, 역사를 입맛대로 뜯어고치기도 하는 그런 일본을 이끌어 왔다. 미디어 관련법의 제, 개정 논란과 60 여 년 전 일본을 겹쳐본다. 너무 흡사한 장면이지 않은가. 등장인물, 주제, 심지어 대사까지 닮아 있다. 미디어 관련법은 미디어 사안으로만 그치진 않는다. 한 사회의 양심, 정의, 미래와도 닿아 있는 막중한 사안이다. 일본의 과거, 그리고 현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일본이 모범이 아닐진대 그 길을 피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지혜를 요청해본다. (이 글은 한국일보 6월 18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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