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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달리기의 JJ (글의 나중을 위해 이름의 이니셜만 밝힌다). 높이 뛰기의 JH. 탁구의 JS. 씨름의 WK. 사격의 TB. 투포환의 JS. 태권도의 SD. 이들은 모두 나의 중학 친구들이면서 유력한 우승후보들이었다. 체육선생님도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컸고 우리를 응원팀 정도로만 여기는 분위기였다. 고향 동네에서 이름을 날리던 친구들이었으니 그 정도 대접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대회가 시작된 첫날 예선 탈락팀이 짐을 싸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출전 팀이 적어아예 준결승부터 시작하는 우리는 아직은 가방을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렸다. 스타 친구들의 경기에 가서 추임새를 넣고 337박수를 치는 일에 열중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스타 친구들의 돌봄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출전 선수라기보다는 스탭에 더 가까웠다고나 할까. 스타 친구들은 예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준결승부터 시작했던 우리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짐 쌀 준비를 했다 (아 맞다. 그 땐 졌다는 표현을 짐 싼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직 결승을 남겨두었던 스타 친구들에 건승을 부탁하며 진주를 떠났다. 한 경기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응원에 힘썼고, 동메달도 땄고 그들을 위무한 스탭 일을 했다는 점에서 밥값은 했다고 자위했다. 예상대로 스타 친구들은 학교 조회 시간에 연단에 올라 다시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동메달에 그친 우리는 그냥 호명되는 것에 그쳤다. 금메달 수상자가 많았던 탓에 은메달, 동메달은 그냥 호명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스타 친구들은 그야말로 동네 스타였고, 초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은 전혀 없었다. 한 경기에 동메달을 목에 달았지만 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들에 뻐기기도 했다. 운동을 계속해 특기생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친구들도 있고, 중간에 딴 길을 찾은 친구들도 있다. 대부분의 스타 친구들은 운동 특기로 진학을 했고 고등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간혹 소식을 전해 들었다. 중학 이후 고향을 떠난 나는 그 때 중학 2학년 진주에서의 고함소리, 땀내 나는 숙소, 짐 싸던 일, 호랑이 체육선생님 눈피해 구경나가던 일, 중간 중간 먹었던 사이다와 삶은 달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가을을 떠 올리면 가장 먼저 낙엽과 오버랩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들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스타 운동 선수였다. 나이 들어 고향을 찾는 일들이 많아졌다. 코흘리개 때 친구들의 경조사 탓이다. 고향 사는 친구들은 귀찮아들 하지만 자리에 앉으면 그 때 이야기 전하고, 친구들 소재도 묻고 안부를 묻는다. 당연히 스타 친구가 사는 모습이 궁금해 귀찮도록 물어본다. 소식이 닿지 않은 친구들도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단다. 대부분은 고향 근처에서 살고 있단 소식에 함께 잘 얼굴을 안 드러낸다는 말이 얹힌다.
나더러 중간에 운동 그만두길 잘했다는 친구들의 말이 귓등을 때린다. 작은 소도시에서 날고 뛰어봐야 어릴 때만 잠깐 반짝할 뿐 아무런 소득이 없는 일 아니었냐고 주변에서 거든다. 내 마음 속 그 스타 친구들의 근황을 근거로 그런 말을 던지는 것 같다. 빛나는 금메달을 멘 연단 위 스타 친구들이 이젠 인생사는 법에서 타산지석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운동 아니면 공부로 인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이분법이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는 탓이리라. 그 때 운동을 선택하겠다는 결정은 어린 마음 혼자 정한 일은 아니었다. 그 결정은 주위의 격려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격려는 많았지만 그 결정이 잘 된 결정이랄 만큼 도와주는 조건의 배려는 없었다. 운동을 계속해서도 그 소질을 살릴 수 있고, 젊었을 때의 운동이 인생을 더 윤택하게 해주고, 고향도 굳건히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조건을 만드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고향의 스타 친구들의 삶을 실패한 삶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때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그 열정에 해당할 만큼의 돌려받음은 없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마음 속 운동 스타 친구들이 어린 아이들과 100미터를 달리고, 탁구공을 넘겨받고, 포환을 매만지며, 샅바를 댕기며, 품새를 챙기며, 바를 풀쩍 넘는 그런 모습을 보기를 바랐지만 그런 장면은 한 컷도 연출되지 않고 있다. 운동장을 뛸 아이들이 없다는 사실만큼이나 대접을 받지 못한 내 마음 속 스타 친구들의 모습이 그래서 안타깝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오래전 그만 둔 운동을 사회 운동으로 종목을 바꾸어 - 힘에 부치기는 하지만 - 나를 뛰게 하는 힘일 지도 모르겠다. (원용진 :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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