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이 전한 말 : "인생을 깔보지 마라"

서울 연희동에 심야식당이 생겼단다. 심야식당은 밤새 하는 식당이란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연희동 심야식당은 일본 만화, TV 드라마의 제목에서 따온 말 아닐까 싶다. 만화는 번역 출간되어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지난 7월에는 만화 <심야식당>의 작가인 아베 야로 씨가 내한해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한다. KBS FM에는 같은 제목을 한 심야프로그램도 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심야식당>에서 선보였던 음식의 조리법이 떠돈다. 조용히 성공한 일류(日流) 작품이 아닐까 싶다.

왜 방송분이 10부작에 그쳤을까 아쉬움이 들 정도로 잘 만든 드라마다. 각 에피소드는 25분 분량이다. 2009년 일본 도쿄방송, 마이니치TV에서 방송했는데 시청률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성공을 거두었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시작과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씬은 차갑지만 따뜻한 도심을 담고 있다. 차가운 도심이 취중인 듯한 노래에 실리면서 그런 느낌을 자아냈다. 도쿄 한 복판의 조그만 골목길의 밥 집. 메뉴는 많지 않지만 손님이 요청하는 음식을 만들어준다. 언제든 쉽게 음식을 만들어내기에 밥집 주인은 ‘마스터’로 불린다.

차가운 도심의 뒷골목 식당이 주 무대지만 드라마는 시종 따뜻하다. 심야식당을 들리는 사람들이 다 가족 같기 때문이다. 매번 맘의 상처를 입은 자가 등장하지만 마스터의 음식으로 이웃의 도움으로 치유된다. 간혹 등장하는 오다기리 조의 “인생 깔보지 마라”는 읆조림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전달되는 중점내용은 “인생을 정면으로 대하라”쯤이 아닐까 싶다. 피하고 싶은 역경을 담담히 정면으로 대하면 실패든 성공이든 판가름이 난다는 점을 전하고 있다. 인생에서 어려움을 피하거나 해결을 미뤄두던 습성의 도시민은 드라마에서 허를 찔리기 십상이다. 따뜻한 이면엔 송곳에 찔린 듯한 움찔함도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차가운 도심, 따뜻한 이웃과 음식, 그리고 간혹 찔러대는 예리함에 허무감도 보태고 있다. 마스터의 담배 피우는 등 뒤의 모습에서 허무감이 가장 진하게 묻어나지만 등장 인물 대부분이 그를 드러내고 있다. 가족같은 이웃들이 같이 울고 웃으며 인생을 마주해 따뜻하지만 왜 그들의 가족은 등장하지 않을까? 심야에 식당을 찾아드는 사람들은 소시민이지만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인 듯 하다. 마스터의 가족 배경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매번 등장하는 이들도 가족과는 동 떨어져 있다. 마스터가 해주는 음식을 통해 식구와 함께 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살아간다. 심야식당은 가족 없는 이들에겐 음식으로 한 식구가 되는 밥상 공동체와 유사하다. 신종 식구라고 해둘까. 그래서 드라마는 시종일관 조용하지만 허무해보인다.

한국 드라마는 아직 식구와 단절된 인물들로만 이야기를 끌어가진 않는다. 과잉일 정도로 등장 인물은 가족과 부딪친다. 가족과의 단절이 <심야식당>의 모티브라면 한국 드라마에서는 가족 과잉이 그 역할을 한다. 연애, 결혼, 사업, 취업, 학업 어디든 가족이 개입한다. 가족은 허둥대며 이러저러한 말을 펴내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주진 못한다. 가족이 보험이던 시절도 지난 셈이다. 그에 비하면 <심야식당>은 가족을 결핍하고 욕망하지만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용하고 쿨하다. 큰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각자의 인생에서 매번 개입하는 한국의 가족, 존재하지 않으나 언제나 그립고 찾아가고 싶은 일본의 가족. 한 쪽은 번잡스러워 보이고 다른 한 쪽은 허전해보인다.

<심야식당>은 느림을 전반적 기조로 하고 있다. 하기야 자정에서 오전 7시까지 문을 여는 식당에서 서두름이 무슨 소용일까. 간단한 요리이긴 하지만 음식도 천천히 만들어지고 대하는 속도도 느리다. 타이틀 씬이 초고속 촬영으로 흐름의 느낌을 준 것도 느린 속도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다. 느린 속도가 배경인 만큼 등장 인물도 세상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다. 한물간 퇴물이거나 그렇게 될 징후를 많이 갖춘 사람들이다 (포르노 배우, 스트립 쇼걸, 게이바 사장, 야쿠자, 가수지망생, 노처녀 집단, 방랑자, 작사가, 유랑악사...). 느려서 따뜻한 것도 결국 이들이 서민이란 점 때문에 생긴 일종의 공명효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지난번 한국의 텔레비전에 김운경 작가가 컴백했을 때 기쁨이란. 한국의 서민을 그리던 그가 컴백하면서 들고 온 선물은 사극이었다. <짝패>는 반상의 차별이 서서히 사라지던 세월을 그려냈다. <한 지붕 세 가족>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에 담가두었던 그의 색깔을 강하게 느낄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아쉬움이 더 큰 이유는 한국 드라마에서 서민이 사라졌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기계적 중립성을 금과옥조로 삼으려는 비겁한 방송들의 습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딱 중간만 가면 된다는 생각. 그런 것 말이다. 중산층을 그려내면 한국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니 ‘안전빵’으로 가야한다고 생각을 굳혔을 수도 있다. 김운경 작가가 자주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것도 그런 뒷 배경도 있으리라.

차가운 도심 속의 따뜻한 이웃이 있는 서민들의 삶이 자아내는 허무함, 삶을 관조해 얻은 아픈 자기 성찰 등이 어우러져 있으니 드라마는 이른바 다억양적(multi-accentual)이다. 다양함이 담겼으니 그에 다가서는 자들도 많았으리라. 이른바 드라마를 많이 열어 제쳤다고 할까. 드라마는 열고, 독서하는 자가 각자 알아서 자기 분수에 맞춰 파먹고. 이른바 독자가 PD가 되는 “Producerly Text"가 된 셈이다. 그 만큼 잘 만든 드라마라는 말이다 (물론 원작이 탄탄한 덕을 보았겠지만).

어릴 때 동네 어귀에는 북소리 내며 다니던 간장 리어카가 있었다. 이른바 왜간장을 파는 리어카였다. 조선 간장은 집에서 메주를 띠워 담았고, 왜간장은 그런 식으로 사먹었다. 그 때 왜간장의 브랜드가 몽고간장이었다. 마산의 몽고정 근처에서 만들었다고 그런 이름을 붙였던 모양이다. 지금도 내 혀는 샘표 간장에 대한 기억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혀는 어김없이 샘표보다 몽고간장을 기억한다. 따뜻한 밥에 ‘빠다’ 혹은 ‘마가린’을 약간 올려 녹인 다음 몽고간장과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린 다음 비벼먹었던 기억. 아들 딸 들도 그 입맛을 나로부터 배워둔 탓에 자주 그 초국적적인(transnational) 비빔밥을 먹는다.

<심야식당>에 등장한 ‘버터 라이스’를 보면서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나도 몸의 1/4 쯤이 일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군산에 가면 ‘나라츠케’란 일본식 밑반찬이 있다. 군산에 남은 일제의 유산이다. 지금 그 이름은 울외 짱아찌로 바뀌었고, 군산의 특미가 되었다. <심야식당>에서 먹는 음식이 다 일본 게 아니고, 일본에서만 먹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것이기도 하고,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자리잡은 동양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서민들이라면 누구나 시도했을 법한 그렇게 만들어 먹었을 법한 음식이었다. 다만 그런 모습을 우리는 잘 보여주지 않고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제대로 이야기를 않는다고나 할까. 스토리가 없다며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묻어둔다. 일본을 극복하는 큰 이야기를 즐길 뿐 내 몸 속에 들어있는, 그리고 또 계속 전해질 일본의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백제가 일본에 뭘 전해주었다는 말은 수 천 번을 하면서도 말이다. <심야식당>도 마찬가지다.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초국적적 음식이 마냥 자신들의 것인 양 소개할 뿐이다 (물론 절제의 미학을 앞세운 드라마여서 그런 군더더기를 넣을 틈이 없긴 했겠지만).

최근 한 채널에서 정보석이 일식당을 흉내 낸 세트에서 심야 데이트라면 연예인을 불러 이런 저런 신변잡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얼핏 본 적이 있었다. 지상파 아침 방송의 심야 버전이라고나 할까? 연예인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던가? 그들은 자주 눈물을 보이지만 그에 반해서 같이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그들과 따뜻하게 나눌 밥을 떠올려보지 못했던 것도 그들과는 내가 다르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그런데도 한국의 방송은 끊임없이 그런 이야기를 연예인으로부터 구하려 한다. 시청자의 주목을 끌어놓고, 연예인이 열심히 자기를 팔 것이므로 제작하는 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카메라만 열어놓으면 된다. 그만큼 한국의 제작자들은 게을리 제작한다. <심야식당>에 나온 “인생을 깔보지 마라”는 말과는 반대로 제작한다. 연희동에 생긴 심야식당의 외관도 일본 속 드라마와 유사함을 강조하고 있어 신선하다는 느낌이 강하지 못했다. 아직은 “인생을 깔보며 사는” 우리네 삶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글

  • daewonyoon 2011/08/02 19:00 # 답글

    심야식당을 보면서 김운경작가를 떠올리지는 못했었는데, 둘 다 좋아했네요. 파랑새는 있다같은 드라마 다시 봤으면 좋겠어요. 시트콤은 아니지만 여러 인간군상들을 보고 낄낄대고, 또 묘하게 슬프기도 하고요.

    포스팅 재밌게 읽었습니다.
  • 라쿤J 2011/08/02 23:24 # 답글

    드라마 재밌게 보고 만화를 사모으는 케이스입니다. 흐르는 개울같은 드라마고 만화예요...ㅇㅇ;;
  • Fabric 2011/08/02 23:34 # 답글

    한국드라마는 가족의 과잉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심야식당이 건네는 메세지가 가끔은 너무 소소한 위로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떤식으로든 공감한다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포스트 굉장히 알차네요:)
  • 석현 2011/08/03 00:20 # 삭제 답글

    서강 하숙촌 근처에 광성슈퍼라고 있어요. 그곳 슈퍼 아주머니는 일용직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게 구석을 비워놓습니다. 때로는 내기 윷판이 슈퍼앞에서 벌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곳에서도
    편의점에 버금가는 CCTV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풍경에는 정답이 없을진대 서민이 산다는 동네는 점점 지워져가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향기, 맛, 멋, 느낌까지도요.
  • SiroTan。◕‿‿◕。 2011/08/03 13:18 # 답글

    짧은게 꽤나 재밌게 봤었습니다..
  • 2011/08/03 14: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카군 2011/08/03 15:19 # 답글

    한잔 한후에 만화를 보니 찌잉하는게 있더군요.
    좋은 만화 입니다.
  • deepthroat 2011/08/03 15:52 # 답글

    심야식당 에세이를 보면, 자기네 거라기 보단 어렸을 때 먹었다는 느낌이 더 강한거 같습니다.

    전 드라마 보단 만화가 더 맘에 들더라구요.
  • lesyeuxdeva 2011/08/03 16:31 # 답글

    드라마도 만화도 정말 재미있게 본 작품이에요 ㅎㅎㅎ
  • Nine One 2011/08/03 16:36 # 답글

    전 화를 다 시청하고 난 뒤 이루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인생의 맛이란 이런 맛~하는게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일본 드라마 였습니다.

    특히 버터밥 편은 사람은 왜 사회적 동물인가에 대한 생각을 깊게하게 만들었습니다.
  • 울트라김군 2011/08/03 17:09 # 답글

    고양이밥 에피소드는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 고선생 2011/08/03 17:48 # 답글

    가족의 과잉.. 진정 와닿는 포인트입니다. 어디가 낫고 어디는 못하고 하는 점은 아니고 인식차이긴 하겠습니다만 한국은 어떤 분야든 너무 일방통행만을 즐기는 것 같아요.
  • 가로우 2011/08/04 01:03 # 답글

    덕분에 또 인생얕보지마... 라는 마스터의 한마디를 다시보고 잠을 청하러 갑니다..
    정말 이드라마는 마음에 많은걸 담게해주는 좋은드라마이지요...
  • Cruel 2011/08/04 03:15 # 답글

    분명히 어디선가 시즌2를 제작한다 들은 기억이.
  • houston 2011/08/04 05:08 # 삭제 답글

    마스터... 일본 만화나 드라마를 보면 커피 샵이나 바, 조그만 식당 같은 곳의 주인은 다 마스터라고 부르는 것 같던대요. 뭐 특별히 요리를 다 마스터했다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닌 듯.
  • 김대통령 2011/08/18 16:56 # 삭제 답글

    우리네 소소한 일상을 다룬, 진짜 '심야식당'같은 프로그램이 생기길 바래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