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새로운 경향에 ‘한류2.0’, ‘포스트 한류’ 새 명칭이 붙여지고 있다. 새 명명으로 과거 한류와 현재 한류가 질적 변화가 있음을 강조하려 한다. 강조에 따르면 이전의 한류는 영화나 드라마에 한정되어 있었고 한류의 바람이 분 곳도 아시아 국가에 제한되어 있었다. ‘한류 2.0’이나 ‘포스트 한류’는 과거에 비해 장르확장, 인기공간의 확장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강조하는 바와 같이 질적 변화로까지 이어졌는지는 정밀하게 따져볼 일이긴 하지만 외형 변화가 있었던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정작 한류의 변화에서 한류 주체의 변화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어 있다. 그 생략으로 인해 한류를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
그 변화 과정에 주목해 보면 한류의 주체가 상당히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한류의 중심 주체는 방송사, 영화제작사 그리고 몇몇 굵직한 스타였다. 외형상 변화한 한류 바람에는 새로운 강력 주자가 등장한다. 그 첫째는 연예기획사이고, 둘째는 정부다. 이 둘은 2인3각 경기를 벌이듯 상호 조응하며 비슷한 담론 프레임으로 한류를 이끌고 있다. 한류 담론을 새롭게 포장하고, 폭을 넓혀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형상 변화한 한류는 ‘장르 확장,’ ‘인기 공간 확장’에 ‘새로운 주체의 부상’이라는 특성을 갖게 된다.
정부정책과 한류
장르 확장으로 한류라는 용어의 규정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영화, 드라마에 이어 K-Pop으로 그리고 따르는 화장품, 화장술, 의상,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 음식, 제조품까지 한류에 포함시키려는 욕망들이 꿈틀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유행하거나 제조된 것 일반을 한류로 바꾸어 말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류가 힘을 얻어 장르가 확장되는 순간 너무 넓은 범주를 포괄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확한 의미를 잃는 역설적 곤경에 처하는 셈이다. 수출품 일반을 한류라는 이름으로 바꾸는 일도 쉽게 벌어지는 것으로 보아 한류는 이제 ‘made in Korea'의 번역어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인기 공간이 유럽 등지로까지 확장되면서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아시아인에 그치지 않고 서양인까지 아우르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자랑스런 수출품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 탓에 한류대책, 한류정책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한류와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한 부서에서도 한류를 언급하고 정책 대상으로 설정하는 일이 빈번하다. 한류음식, 한류외교, 한류제품, 한류의상, 한류전통문화, 한류관광 등등 끝간 데 없이 이어지고 그에 걸쳐진 정책들도 풍년을 이룬다.
정부는 자신이 한류의 주체가 되고 있음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보인다. 정부의 개입을 지적하면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만 한류의 ‘성공적’ 수행에서는 보상적 평가를 받기를 갈망한다. 정부가 한류를 직접 개입하진 않으나 지원을 통해 성공할 수 있게 했고, 앞으로도 그 방향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태도다. 2011년 2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컨텐츠 정책 업무보고>를 잠깐 살펴보자. 콘텐츠산업 진흥 기본 계획에는 컨텐츠의 글로벌 시장진출을 5대과제 중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다. 해외진출, 친한류 인사 교류, 글로벌 컨텐츠 제작/유통지원, 컨텐츠 현지화 지원, 대중음악 제작/홍보지원 외에 한류지원 협의체 구성, 예술/관광/스포츠/해외홍보 연계전략, 국가별 전략, 혐한 대응전략 등을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등 각 장르에 해외시장 개척 전략을 따로 부가하고 있다. 문화컨텐츠 정책의 상당부분이 한류로 모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수출품, 새로운 먹거리, 새로운 산업을 찾아낸 것으로 이해하고 그에 정부가 힘을 쏟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함께 한류 개념의 무한확장에 기여한 또 다른 한 축으로 연예기획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스타 발굴과 양성 전략으로 한류에서 주도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다. 전략이 시스템화되어 있고, 창의적이어서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자신들의 노력으로 인해 한류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홍보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결실을 보게 되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통한다는 점을 널리 알린다. 그 과정에서 기획사는 사적 이익을 취하는 기획사를 넘어서 애국적 기업, 수출하는 기업으로 스스로를 포장해낸다. 기획사에서 벌어지는 행위도 그런 식의 포장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의미있는 일로 격상한다.
한 기획사의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칭기스칸도 프랑스까지는 못 갔다. 우리는 칭기즈칸도 못한 역사적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부심과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유럽 작곡가와 프로듀서 70여명을 초청한 콘퍼런스에서 ‘CT(Culture Technology)이론’과 ‘3단계 한류 확산’ 전략을 소개했다. 그가 밝힌 ‘3단계 한류 확산’ 전략은 다음과 같다. “한류 확산 1단계는 한국인 감독, 아티스트가 만든 작품을 수출하는 단계, 2단계는 한국인과 외국인 혼성 공연팀을 만들어 그 작품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현재 한국 한류가 도달한 단계, 마지막 3단계는 (한국 기획사가) 외국에서 현지 기획사와 합작기업(joint venture)을 만들고 이를 통해 창출한 부가가치를 공유하는 단계”다. 이쯤되면 한류는 이제 수출입국의 주력이고, 경제발전의 주인공이 되는 경제재로서, 그리고 스타와 기획사는 산업역군의 자리를 굳건히 했다는 평가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연성국가주의(Soft Nationalism)
정부와 연예기획사가 애국, 국익, 국격, 국가브랜드 등을 한류와 연결짓고 정책 수립을 하고 사업을 폄으로써 한류를 성장발전시키려는 욕망을 연성국가주의(soft nationalism)라 부른다. 이는 일본의 이와붙이 교수가 처음으로 제안한 용어다. 1960년 이후 일본이 경제강국을 넘어 아시아 시장을 문화적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국가적으로 지원한 것을 두고 붙인 이름이다. 문화산업의 해외 진출 뒤에 도사린 국가적 욕망을 지적한 용어인 셈이다. 한국의 연성국가주의가 일본의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때 ‘연성(soft)'은 소프트웨어를 내세웠다는 점과 국가가 직접 문화산업을 경영하진 않으나 정책으로 연착륙하도록 돕는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연성국가주의는 정부와 연예기획사 등과 같은 문화산업과의 일정 공조로 발생한다. 하지만 그 공조는 둘 만으로 그치진 않는다. 연성국가주의적 담론은 언론을 통해 재생산되고, 사회 내 여론을 주도한다. 한류를 수출품을 바꾸어 말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음에 비추어 대중들 또한 그 같은 말하기 방식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 연예기획사의 주가가 연일 상종가를 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연예기획사의 엔터주와 관련이 있을 법한 홍보성 기사에도 쉽게 반응하고 그들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이어 생각한다. 언론은 그 여론을 받아 증폭시키고, 스스로 주요 주체로 나서려 노력도 한다. 최근 텔레비전이 연이어 해외에서 K-Pop 쇼를 주도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 정도면 한류를 미는 연성국가주의는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고, 그를 자연스러운 정책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하겠다.
연성국가주의는 이미 국외의 여러 사회에 의해 면밀하게 포착되고 있다. 소위 혐한류로 불리는 내용을 꼼꼼히 따져 보면 한국 문화에 대한 혐오와 함께 한류를 국가가 직접 나서서 브랜드화한다는 불만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의 언론에서는 아예 한류를 국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있다. 연예기획사의 강도 높은 훈련을 지적하면서 그것조차 국가가 용인하고 있으며 병영 형태의 문화를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K-Pop의 인기 이면에는 이 같은 희화화가 뒤따른다. 한류가 국가 정책에 의한 산물임이 간파되면서 수용국가 측에서 정책으로 규제하겠다는 담론도 등장한다. 연성국가주의는 주도한 정부나 그에 조응한 연예기획사 등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한류를 국가주의적 색채로 포장해내는 일은 해외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내부 폐해도 만만찮다. 국가주의적 발상, 언급은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수용국가에 대한 일정 태도를 갖게 하는 효과를 낸다. 한국은 만들고, 저들은 받아들이고 등과 같은 태도를 형성케 한다. 배타성을 갖게 한다는 말이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의 한류 인기를 민족주의적 색채로까지 끌고 가는 담론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대중문화의 교류가 사회적 악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사건일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이나 문화산업의 열성이 이 같은 우연한 부정적 결과에 까지 이를 수 있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성국가주의는 한국 내부의 문화에 대한 반성 기회를 뺏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류는 한국이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의 대중문화의 흐름을 감안하면 그것이 온전히 한국 것일 리가 없다. 미국,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것의 일부이기도 하고, 한국적으로 가공한 것이기도 하다. 한류 자체는 철저히 혼종적 산물이다. 혼종적인 것임을 감안해 그 혼종성이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을 정리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류가 한국산임을 강조하고, 그를 통해 애국적 감정을 불러내는 과정에서 혼종성, 혼종성에 대한 성찰의 과정은 생략될 수밖에 없다. 그 생략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감내해야 할 손실은 한류로 얻어낸 경제적 가치와 비할 데 없을 정도로 큰 것일 수 있다.
국가주의적 프로젝트는 늘 성공을 전제로 한다. 단기간에 성공할 내용에 지원이 가해지고 그를 통해 성과를 과시하고 또 다시 정책을 수립한다. 이른바 국가주의의 선순환 구조다. 그 구조 안에서는 주류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주류 장르에 지원이 가고,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주류 기업이 정책의 선택을 받는다. 그 같은 주류화(mainstreaming)로 사회 내 문화 다양성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주류화는 사회를 동원 체제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기도 한다. 방송이 나서서 주류화된 내용을 펴고, 사회도 그를 자연스레 받아들여 의미를 순환시켜 감으로써 국가주의 프로젝트에 모두가 동원되는 결과를 빚는다.
문화정책으로의 전환
한류와 정부의 지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측도 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류의 지금 지위가 정부 지원없이 이뤄지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하지만 한류를 경제재로만 사고하거나 국격의 제고자라는 사고를 넘어서서 세계와의 교류의 장으로 보자는 제안에 이르면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은 개선할 여지가 많아진다. 한류 정책이 아닌 문화정책으로 전환하고 문화와 관련된 미덕인 다양성의 확보, 외적 다양성 확보를 위한 한류 수용국 문화에 대한 배려, 장기적 인프라 제공을 고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 내에서의 한류정책은 타 문화예술사업과 따로 떼어져 있어 유기성을 결여하고 있다. 한류정책이 경제, 산업 정책으로 전환된 탓이다. 이를 문화정책으로 전환해 문화예술사업이 한류의 자양분이 되게 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그 같은 제안은 오래 전부터 이뤄져 왔지만 지나치게 장기적 계획이고, 당장 성과를 거둘 수 없으며, 이상적이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이는 현재의 한류정책이 단기적이고,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며 현실 시장에 파묻힌다는 지적과 통하는 부분이다. 연예산업은 수요를 예측하기 힘든 우발적 요소를 많이 가진 산업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문화예술분야를 튼실하게 해두는 것이 오히려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이끌거나 그럴 확률을 높이는 프로젝트일 수 있다. 그 동안 한류에 대한 지원의 노고를 충분히 인정을 받았으니 이제라도 발상을 전환해 문화정책으로 옮겨가는 지혜를 발휘해야겠다.
(이 글은 <관훈저널>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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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신 2016/04/21 16:19 # 삭제 답글
마이클신 2016/04/21 16:19 # 삭제 답글
마이클신 2016/04/21 16:19 # 삭제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