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 하락을 겪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작품이다. 스타가 가상 부부가 되어 진짜 부부 행세를 하는 내용이다. 초기의 인기에 비하면 고전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초기에 아이돌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일은 리얼리티를 위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억지 감정을 진짜 감정인 것처럼 처리해내는 선수인 아이돌 스타들 말고는 그것을 잘 감당해낼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연스러움, 천연덕스러움에 대한 반응 열기는 엷어졌다. 식상해 지기 시작했다는 말은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그 짧은 기간에도 우리 주변에 그런 일들 이 비일비재해졌다고 지적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대부분의 서비스 노동 현장에서는 고객의 감정을 무조건 챙겨야 한다는 노동 지침 목록은 늘고, 노동자의 감정은 버려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다. 일상에서 그런 일이 늘어나 넘치는 마당에 텔레비전에서 벌어지는 가짜 감정놀이가 재밌을 턱이 없다.
자신의 감정을 파내고 진짜처럼 억지 감정을 넣어 서비스를 하고, 그를 통해 임금을 얻는 과정을 감정노동이라 부른다. 감정 노동은 표현 지침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반복해 숙련화한 결과다. 자신의 감정 대신 지침에 입각한 표현 규칙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노동자는 어떤 경우에도 자연스러운 본인의 감정을 유보해야 한다. 언제나 고객을 보고 웃어라, 카메라를 들이대도 언제든 짜증 내지 말고 받아들여라, 큰소리로 씩씩하게 관계자들에게 절하라 등의 지침은 아이돌을 넘어 서비스 종사자 모두에게 필연적인 지침으로 다가온다.

포스코의 왕 상무와 대한항공 사건은 <우리 결혼했어요>가 인기 하락에 놓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해준 사건이었다. 도처에 표현 규칙, 지침에 따라 노동을 해야 하는 감정노동자가 깔려 있음을 알려준 것이다. 많은 경우 초점은 왕 상무에 맞춰졌지만 사실 왕 상무는 대부분의 고객이 그렇다는 사실을 숨 겨주는 시뮬라크라 같은 존재일 뿐이다. 돈을 쓰는 고객이 왕 상무와 같은 지위에 올려지는 일이 다반사인 형국에 그런 고객이 되길 누가 주저하랴.
편의점 고객의 잔돈에까지 높임말을 붙이도록 한 표현 규칙,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표현 규칙이 있고, 그에 따라 훈련받길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판에 고객이 왕 상무가 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서비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욕망으로 노동자의 몸 안에 표현 규칙을 기억하게 만 들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웃음을 띠거나 가까이 다가가도록 강요하는 사용자가 있는 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왕 상무가 될 조건에 놓여 있는 셈이다. 왕 대접을 받는 고객이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고객 자신도 그런 노동을 할진대 그 대접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 이글은 한겨레 21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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