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옆 부지를
<청소년 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유령에 깔린 가치들
신자유주의를 책 제목으로 붙이면 책이 잘 안 팔린다는 말이 출판계를 떠돌았다. 그 말을 비켜가 낙양의 지가를 올린 신자유주의 개론서도 있었으니 꼭 맞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출판계 말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운 면도 있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그것이 갖는 공포심 탓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명료하지 않지만 스멀거리는 부담,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지난 20여년 가까이 신자유주의의 위험은 이곳저곳을 통해 엄청나게 이야기되었다. 하지만 대중은 그를 자신에게 곧 다가올 위험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막연히 무서울 거라는 생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는 지금 여기라는 의미보다는 앞으로 있을 막연한 어려움, 손에 잡히지 않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유령은 인간의 주위를 배회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당장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기되는 존재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미 찾아왔지만 나에게만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재수없으면 찾아올 존재다. 그래서 끊임없이 연기되고, 남이 겪은 이야기로 전해지고, 나에겐 미래의 공포가 된다. 미래로 연기되는 존재가 되면서 유령은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한다. 늘 나를 사로잡지는 않지만 문득문득 힌트를 주는 존재가 된다. 신자유주의도 그런 식으로 대했을 것이다. 아직 날 찾아오지 않았지만 쉽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존재. 혹은 재수 없으면 만날 수 밖에 없으니 조금이라도 관심은 두어야 하는 존재. 저 멀리 남도의 말을 빌려 오자면 ‘껄적지근한 존재’인 셈이다. 그러니 신자유주의를 주제로 책을 내 경고를 주고픈 욕망은 많으나, 그에 흔쾌히 지갑을 열어 챙겨보려는 대중은 적은 현상이 일어났으리라 짐작한다.
껄적지근한 것들, 유령, 미뤄두었던 일은 언젠가는 파국을 맞게 되어 있다. 이미 우리 말 속에 그에 대한 진리가 담겨 있다 ; ‘어쩐지 껄적지근하더니만..’. 우리 몸이 약해지면 나에겐 오지 않을 것 같은 유령이 달라붙는다. 미뤄두었던 것들이 누적되어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는 때도 온다. 신자유주의적 조처들은 어느 한편을 무시하고 이뤄진 것들이다. 규제를 철폐해 이룬 탈규제의 밑바닥에는 희생된 공공성이 무의식으로 깔려있다. 시장의 자유라는 명제 밑바닥에는 시장 실패라는 무의식이 떠받치고 있다. 당연히 탈규제와 시장의 자유라는 신자유주의적 드라이브는 언젠가 밑바닥에 깔려 있던 공공성, 시장 실패의 역습을 받게 된다. 조금 빠르거나 더디거나 차이일 뿐 결코 그를 비켜갈 순 없다. 그를 비켜간 역사가 없었던 것이 그를 증거다.

너희들이 손톱 밑 가시다
호텔 허가와 관련된 주무부서는 관광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다. 그 쪽 논리를 들어보면 호텔 허가와 관련해서 지금껏 가장 흔한 주장은 호텔과 놀이다. 골프장 건설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을 거의 자동 수준에서 뱉어낸다. 해외 원정 골프를 막기 위해서라도 골프장을 건설해야 하고, 바로 그 자리에 호텔을 짓자는 말을 명제처럼 말해왔다. 아니면 사람들이 접근하기 좋은 유적지 근방에다 호텔을 짓자고 한다. 도심 호텔 논의가 바로 그것인데 인사동 바로 옆에, 혹은 경복궁 옆에 뭐 그런 식이다. 이 같은 제안은 어쩔 수 없이 문화재 관련법, 도시 계획 관련법, 환경 관련법 등과 충돌한다. 지금껏 그렇게 하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자연경관을 함부로 해치지 않고, 문화재를 훼손시키지 않으며, 도심의 용도를 제대로 챙기게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밀어 붙이기에는 그 이유도 다 무용지물이 된다. 돈이 된다는 데 다른 이유를 대지 말라는 것이다. 공공적 이유는 모두 손톱 밑 가시가 되고 만다. 손톱 밑 가시만 뽑고 나면 손도 몸도 다 멀쩡해진다는 호쾌한 논리를 편다.
지난 20 여년 간 온갖 가치있는 것들은 손톱 밑 가시라는 이름으로 죽은 개취급을 당해왔다. 지켜야 할 것들이 탈규제의 대상이 되면서 스러져 갔다. 그나마 최소한으로 남아 있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조건들도 손톱 밑 가시라는 주홍 글씨가 되어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금전적 가치를 능가하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게 되었다. 어른들을 미운 눈초리로 쳐다보면 항변하는 청소년들이 붙인 세월호 관련 벽보에도 돈만 아는 냉혈한 어른들에 대한 저주가 또렷할 정도다. 힘없는 존재를 지켜줄 공공성의 보호막도 훌러덩 벗겨버린 국가에 대한 원망도 약자들 사이에선 대세 화두다. 그런데도 더 많은 시장의 자유, 더 많은 탈규제, 더 많은 금전적 이익을 나팔불며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다른 사회가 ‘아차’ 싶어 그 행보를 늦추고 있는 것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앞으로만’을 외치는 저거노트와 같아 보인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돈 벌이를 막는 것들을 손톱 밑 가시라고 말하고, 그를 제거하는 것으로 공무원의 수행을 평가하겠다는 발언이 전 방송 채널을 통해 전 국토에 울려 퍼지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세월호>가 잠긴 데도 손톱 밑 가시 정신이 일조를 했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도 경복궁 옆에 호텔을 짓는 일을 손톱 밑 가시 없애는 첫 번째 본보기로 삼겠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의 죽임을 경험하면서 그들을 위해 미안해하고, 오직 그들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공부하는 자리에 호텔을 심겠다고 우긴다. 그나마 청소년을 위하겠다면 마련해둔 최소한의 규정들도 지워가며 호텔을 짓겠다고 떼를 쓴다. 경복궁이 갖는 가치는 호텔이 빌리는 경치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재, 청소년, 학교는 돈벌이에 눈감아달라는 주문이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돈벌이에 적극 앞장 서 달라는 주문일 수도 있다.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고, 문화 행정을 책임진다는 문화체욱관광 장관이 그렇게 주장하고, 청소년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교육부 장관이 그에 동조하고 있다. <세월호>가 청소년을 수장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땅에서도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 역사를 파묻고 청소년을 외면하고 있다. 그것도 정부가 말이다. 그들이 <세월호>에 대해 말하고 보여주는 제스츄어는 그런 점에서 모두 더러운 거짓이다.

쩔적지근함을 연기하지 말자
미뤄두었던 그 껄적지근함을 직시하는 일을 더 이상 연기하진 말자. 두렵더라도 마주하자. 그러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그로부터 뒤통수를 맞고, 맞아 비틀거리고, 피를 토하게 된다. 300여명이 수장당하는 와중에도 쌍용차 해고 노동자 스무 몇 번째의 죽음이 같이 했다. 그 뿐이 아니지 않은가. 더 큰 위험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더 큰 껄적지근함도 여기 저기 포진해 있다. 어쩔 수 없어서 떠안아야 하는 위험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움켜지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해 감수해야 하는 위험들이다. 아이를, 가족을 친구를 잃고서야 그 몇 푼이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말하지만 아직 우리의 손은 그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꾸 위험을 숨기고, 피하고, 신자유주의적 밀어붙임에 반대하지 못하며 언젠간 할 거라고 연기하고 있다. 그럴수록 껄적지근함은 더 커지고 쾌적한 삶은 더더욱 멀어지고 있다. 여중고 앞에 호텔을 짓겠다는 생각을 한 자나, 그를 허용해주자고 선동하는 쪽을 <세월호> 선장과 달리 봐야할 할 이유가 있을까.
모두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고. 모두들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아이들 잘 지키겠다고. 대통령도 그렇게 말했단다. 지키겠다고. 그래 모두 힘을 합쳐 지켜야 할 가치들은 지켜가자. 돈에 영혼을 팔고 유령에 쫓기듯 혼나간 사람들처럼 살지는 말자. 유령을 쫓고, 껄적지근함을 치유해나기 위한 축령이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끌고 온 유령을 밀어내는 축령이 있지 않고서는 <세월호>의 희생자로부터 얻는 유훈도 챙기지 못한다. 그 축령 의례에 올려질 제사물건이야 뻔하지 않은가. 유령 탓에 쫓겨난 것들이다. 사회가 온전히 지켜야 할 가치들이다. 공공성이 그 첫 번째 쯤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제안한다. 경복궁 옆 터를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청소년에 속죄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증표로 청소년들이 맘껏 놀고, 그 안에서 맘껏 뽐내고, 떠들고, 발표하고, 연애하고, 뒹굴 수 있는 청소년 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미 그 부지를 역사공간, 문화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들 또한 공공성의 강조와 함께 이뤄진 것들인 바 이왕에 제출된 그 안들을 참작하면서 온 사회가 미래 세대인 청소년을 위하겠다는 다짐을 다지는 그런 계기의 공원을 만들기를 제안한다.
덧글
멋부리는 눈토끼 2014/04/29 14:19 # 답글
하긴 신자유주의=탈규제=악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런 말 해봐야 의미가 없겠지만요.
로보 2014/04/29 14:21 # 답글
자.그럼 저도 세월호 선장이 되나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로보 2014/04/29 14:28 # 답글
NET진보 2014/04/29 14:31 # 답글
그리고 세월호참사 안전규제 문제를.... 신자유주의를 원인으로삼는다면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김대중정부부터 의 문제이기도하죠...
이는 지난 20여년정부의문제입니다.
멋부리는 눈토끼 2014/04/29 15:21 #
멋부리는 눈토끼 2014/04/29 15:07 # 답글
... 2014/04/29 17:46 # 삭제 답글
멋부리는 눈토끼 2014/04/29 19:09 #
바람불어 2014/04/30 05:51 # 답글
이런 식의 쓸데없이 멋만 부리고 거창한 정서를 뒤덮은 글, 다시 읽어보면 창피하지않습니까?
교수님이든 누구든간에 그 정도 직함을 갖고있으면 글을 쓸 때 좀 정치(精緻)하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구나 하면서 읽을 가치가 있죠.
한경오든 조중동이든 간에 배운 티 나는 직함 갖고 칼럼 쓰는 분들. 자기 전공이야 알아서들 잘 쓰겠죠.
그런데 자기 전문분야가 아닌 사회현상에 대한 칼럼을 쓰는 순간, 이른바 논리가 널뛰기를 하면서 요거 대충 , 저거 대충 써서 연결한후 현학적이고 쓸모없는 글을 쓰더군요.
이 글 처음의 문단 1,2,3의 신자유주의 얘기는 주제와 상관없는 거, 잘라내야하고
중간의 문단 4,5,6의 내용, 규제완화-세월호-경복궁옆 호텔은 논리적으로 이을수있는 꺼리가 없으며
마지막 7,8문단은 4,5,6의 의미없는 반복.
왜 청소년공원이어야하는지 그 이유란게 기껏 세월호의 단원고 학생들을 근거로 나쁜 어른 vs 돈만 아는 나쁜 어른에 대한 보상정도의 얘기. 진도 앞바다를 어른 vs 청소년으로 단순화한후 워프해서 서울 경복궁옆에 청소년 공원이란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주장입니까?
이 글 쓰면서 흔히 말하는 장소성에 대한 고민은 1mm라도 했습니까?
대체 청소년 vs 어른 , 순수(?) vs 돈벌이라는 초절정 단순무식의 이분법으로 복잡하고 다종다양한 세상일을 어떻게 분석하려는겁니까. 도리어 그걸 경계해야할 교수란 사람이. 제목을 저 정도로 잡으려면 경복궁옆 호텔부지가 역사적으로 어떻고 주변 환경이 어떻고 부지는 어떻게 매입하고 어떤 시설과 조경을 해서 어떤 효과를 유도하고식으로...
좀, 현실에, 써먹을데가, 있는 , 가치있는 ,얘기를 해야지.
진도에서 어른대 청소년으로 신자유주의로 어른들 돈벌이로 경복궁옆으로 희박한 관계를 억지로 연결시키고 연결시켜서 청소년 공원을 짓자?
네 그래요. 공원 지읍시다. 공원 짓는거 뭐 어려워요? 중국산 붉은 벽돌에 좀 더 비싼 돌 깔고 나무 심고 팻말에 청소년 공원 붙이면 그만이지. 중간에 애들 놀라고 넓은 공간 하나 만들어주면 땡입니다.
근데 그 공원을 어떻게 활용할겁니까. 청소년 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아니 교수님이 앞에 썰을 푼 신자유주의니 어른들 돈벌이니 이 거창한 주제를 관통한 공간구성은 어떻게 하고 공간활용은 어떻게 할건데요? 그런거 지금 생각은 하고 청소년 공원 짓자는 겁니까?
진짜 이딴식의 글자낭비 바이트낭비를 유명한 신문칼럼의 먹물들 글에서 자주 봐왔는데 여기서 또 보다니 짜증이 이는군요.
추상적인 얘기는 추상적인 얘기로 끝내고 추상적인 얘기를 현실에 적용하려면 사건과 사건과 사건을 정확하게 꿰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세요. 하지만 생각을 깊게 못했고, 현실에 대해 성실하게 파악을 못했다면 그냥 입을 다무세요.
산수유 2014/07/30 11:27 # 삭제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