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적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속한 언어 공간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누구든 독자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 한글로 글을 적는 경우엔 한국 독자 혹은 그 안의 더 좁은 범주의 독자를 상정하게 된다. 간혹 잘 적은 글은 번역되어 다른 언어 공간에서 다시 태어나긴 하지만 그럴 경우 번역자에 의해 혹은 원저자에 의해 약간의 변명이 더해진다. 원래 독자와는 다르니 잘 감안해달라는 부탁일 것이다. 이처럼 글 적기 혹은 적어진 글은 독자가 - 암묵적이든 아니든- 상정되어 있고, 그 들과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다. 바흐친이 텍스트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준 탁월한 제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계 바늘을 약 20여년 전으로 돌려본다. 영어로 박사논문을 적을 때다. 그 때 나의 독자는 당연히 심사위원들이었다. 물론 더 많은 독자를 겨냥했을 수도 있지만 박사 학위를 따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나는 논문에서 그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3번의 심사에서도 그들의 언어가 내 논문 안으로 질러 들어왔고, 때론 내 고집이 그들의 조언을 막기도 했다. 논문 주제가 한국의 문화정책과 관련된 것이라 비교적 큰 목소리로 군사 정권의 정당성을 비판했고, 그에 맞는 다양한 이론을 끌어왔다. 나의 독자인 심사위원들은 그 같은 비판적 시각에 동의해주었다. 오히려 더 강한 목소리를 낼 것을 주문하는 입장도 있었다. 그래서 독자와 관련한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발표할 내용도 나름대로 요약해두었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분명 다른 언어 공간에 존재하는 다른 독자집단을 동일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미국의 헤게모니가 내 안에서 잘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이후 나의 글적기가 미국인을 상대로 해본 적이 없다. 간혹 영어 논문을 적기도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작성된 글의 번역본이었던 탓에 그런 독자 상정은 없었다. 예전 20여년 전의 글 적기를 반성했다기 보다는 아예 학문 생활 자체에 그들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연구나 학문 정진이 더 잘 이뤄졌다면 과거의 경험을 비판하고, 미국 중심이었던 경험을 뒤집는 작업을 했을 테지만 실제론 그러질 못했다. 그러니 글적기에 대한 고민의 계기가 없었을 수 밖에. 그러다 지난 몇 년간 일본과 관련한 연구와 교류를 하면서 다시 글적기를 고민하게 된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본 관련 일을 연구하고, 글을 적다보면 독자가 양분되어 나타난다 (사실은 그 보다 훨씬 더 복잡하긴 하다). 한국의 독자와 일본의 독자를 모두 감안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그럴 경우 글의 진전이 어렵다. 아니면 주절주절 변명으로 일관되기 십상이다. 한국의 강한 민족주의를 비판하면 당연히 일본의 독자들이 그를 쉽게 자신의 민족주의로 수용할 거라는 고민에 빠진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양쪽 독자 집단이 강한 ‘서사적 진실’을 기반으로 모든 현안을 이해하려는 고집이 있는 탓에 힘이 든다는 말이다. 심지어 과거에 대한 기억 조차도 선별적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대한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그 기억이 민족적 기억이며 바뀔 수 없는 ‘서사적 진실’이라고 말하기 일쑤다. 불가피하게 연구자는 그 중간에 서서 그 불편한 진실을 해체해내야 하는데 그 일을 쉽지 않다.
대중 기억과는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동료 학자집단(peer scholars)에서도 드러나게 반응을 하지 않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양비론적 입장에 서게 되는데 늘 그렇듯 양비론이 맞을 운명이란 뻔하지 않은가. 사실 이 같은 일은 반복된다. 비극이나 희극으로 바뀌는 재미는 없으나 그냥 지루하게 반복된다.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기억을 떠 받치는 ‘서사적 진실’로부터 후퇴하지 않고, 또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누가 더 전쟁의 피해자인지를 이야기해야 하고, 국제 무대에서 피해자 경쟁을 벌인다. 그 경쟁으로 인해 일본은 이제 전쟁의 가해자임을 망각하는 새로운 기억법에 익숙해졌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가 8월의 저널리즘 주요 메뉴가 된 지 오래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쉬쉬하던 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주의 담론으로 치환하고, 모든 일에 그를 앞장 세운다. 그러면서도 일본인 처 문제나 ‘양공주’ 문제엔 입을 닫는다. 양 쪽다 과거, 기억의 문제에선 도그마에 갇혀 있다. 그래서 양 독자를 겨냥한 일을 하기엔 늘 주저되고, 조심스럽고 그렇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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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결국짐승 2014/11/21 21:18 # 삭제 답글
2014/11/23 06:49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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